생각해 봅시다/ “오미크론 확산세가 가시면 식사 한 번 합시다”
“불법이라 낙인찍혀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민은 스스로 돌봐야”
지난 일요일,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모르는 번호가 휴대폰에 뜹니다. 전화를 받으니, 떠듬떠듬 "선생님, 어디입니까?"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지난해, 이주민 백신 접종을 진행하며 센터 가까이에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위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었습니다. "센터인데, 무슨 일이 있냐?"라 물었습니다. 하루 종일 몸살과 기침으로 고생을 했는데 나아지지 않아 전화했다 합니다. 발걸음을 돌려 이주민의 집을 찾습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접선이 이뤄집니다.
문고리에 위의 물품(사진)을 걸고, 휴대폰으로 자가검사 키트 사용법이 담긴 동영상을 전송합니다. 양성이 나오면 당장은 상비약 외엔 방법이 없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비닐봉지에 담긴 키트가 문고리에 달립니다. 15분을 기다립니다. 결과는 다행히 한 줄, 음성입니다. H씨가 오늘은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유행 상황은 누가 언제 감열 될지 안심할 수 없습니다. 증상이 약해졌다 하나 여전히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입니다.
사실 H 씨에게 이보다 더 무서운 게 있습니다. 방역 대응 관련하여 정부의 단속이 유예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불심검문이나 신고의 위험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혼자 관공서인 보건소와 임시 선별검사소를 찾을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자가키트 검사로 양성이 나오거나, 감염이 의심스러운 이주민과 일요일에 선별검사소를 동행합니다.
오미크론 확산 이후, 등장한 셀프 대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주민이 많습니다. 더욱이 미등록 이주민에게 스스로라니요.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은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모두가 바라 마지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바람일 뿐입니다.
한 이주노동자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이 관객과 대화에서 자신이 한국에 온 지 10년이 지나 마흔이 넘었지만, 한국에선 열 살 아이와 같다 하더군요. 이주민은 지낸지 몇 년이 되어도 한국 생활에 서투르다는 비유일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유창한 한국어로 표현하는 이주민에게도 한국살이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불법'이라 낙인찍혀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민이 스스로 돌봐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런 각자도생 시대에 혼자 서겠다며 세상에 나온 이주민이 있습니다. 미등록 상태인 미혼모로 3살 된 아이의 어린이집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월, 어린이집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이가 3월 2일부터 어린이집에 등교하여 오늘로 한 달이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전할 입학 선물을 고민하던 차, 한 후원자의 연락이 왔습니다.
이 후원자는 작년, 이 가정에 대한 지원을 고민하던 와중에 때마침 정성을 건네셨습니다. 주신 손길을 이 가정에 잇대겠다 말씀드리고 긴급생활비를 지출했는데, 올해도 때맞춰 후원해 주셨습니다. 작년에 지원했던 가정의 아이가 입학한 일을 알리고, 후원금으로 보육료를 내겠다 했습니다. 후원자와 이 가정이 인연이면 인연인지라 만나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미크론 확산세가 가시면 식사할 자리를 갖자 제안했고, 양쪽 다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혼자 살아야 하는 시대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이렇게 눈으로 보게 됩니다. 후원자님들과 지지자님 덕분에 저희 센터가 혼자 설 수 없는 이주민 옆을 지킬 수 있습니다. 주시는 정성과 마음 허투루 흘리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혼자 서려는 이주민에게 전할 수 있도록 충실히 노력하겠습니다. 글/ 서울이주노동자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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