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플러스/ 경제 침체와 안보 위기, 중립화로 번영과 평화를(상)
요즘 나라 경제가 몹시 어려워진다는 소식이 연이어 나온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올해 무역적자가 500억 달러 안팎에 이르고, 내년 경제성장률이 1.6-1.8%에 머무를 것이라는 보도다.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일자리가 줄어들며 서민의 삶부터 더 팍팍해지기 마련이다. 정확한 수치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무역협회와 관세청 홈페이지를 뒤졌다.
통계 처리한 12월 20일까지 무역적자 490억 달러. 21세기 들어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33억 달러 적자를 기록한 이후 처음이자 대규모 적자다. 수출입통계를 분석해보니 최근 5년간 (2017-2021년) 연평균 556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2009년부터 계산해도 작년까지 연평균 530억 달러 흑자를 누리다 올해 500억 달러 정도 적자를 본다니 그야말로 곤두박질이다. 올해 큰 변화로 최대 수출시장 중국으로의 수출이 크게 줄고 1등 수출 품목 반도체 수출이 대폭 감소한 게 눈에 띈다.
중국은 지난 5년 간 한국 전체 수출액의 26%와 전체 무역흑자의 64%를 맡았다.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고, 그 가운데 54%가 중국으로 향한다. 한국 수출의 핵심이 중국에 반도체를 파는 것이란 말이다. 이게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야욕과 압박이 곁들여진 미국의 기술전쟁 때문이다.
<무역 전쟁>
미국은 급속도로 성장해온 중국에 여러 가지 전쟁을 걸었다. 먼저 무역전쟁이다. 최근 5년간 미국의 무역적자 총액은 연평균 8,224억 달러인데, 중국에만 3,612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전체 적자의 44%다. 미국 5대 적자국 가운데 2~5등 멕시코, 독일, 일본, 베트남 등 4개국 적자를 모두 합친 2,835억 달러보다 훨씬 많다. 참고로 지난 트럼프 정부 시기 (2017-2020년)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연평균 150억 달러였는데, 미국은 그게 많다고 엄살 부리며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다시 협상해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미국과 중국 경제가 상호 의존적이지만, 미국이 중국에게 무역전쟁을 끝내기 어려운 이유다. 이 전쟁이 지속되면 한국이 큰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1등 수출국 중국과 2등 수출국 미국 사이에 끼어있기 때문이다.
<기술전쟁>
기술전쟁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선두를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미국의 최후 발악과 같은 전쟁이다. 주로 국제금융센터가 2021년 10월 발표한 보고서 <미, 중 5대 첨단산업 패권전쟁 전망 및 영향>과 하버드대학 케네디학교 벨퍼 과학. 국제문제 센터 (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 Harvard University Kennedy School)가 2021년 12월 발표한 보고서 <거대한 기술경쟁: 중국 대 미국 (The Great Tech Rivalry: China vs the United States)> 내용을 요약해 정리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첨단기술 세 가지만 소개한다.
첫째, 5세대 (5G) 통신 분야에서는 중국이 크게 우세하다. 미국이 2018년 중국의 화웨이(华为技术有限公司) 최고 기술경영자를 해외에서 긴급 체포하도록 하는 등 세계 제1 통신장비 제조기업에 온갖 제재를 가해왔지만, 중국이 시장 점유율 70%, 특허 점유율 40% 안팎으로 미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과거 4G 시대는 미국이 압도했지만, 미래 5G-6G 시대는 중국이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다.
둘째, 인공지능 (AI) 분야에서는 비슷하지만 중국이 조금 우세하다는 평가가 많다. 설비와 제조, 전문 인력 등에서 중국이 강해도, 시장과 특허 점유율에선 미국이 앞서 있기에 다시 역전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셋째,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이 한참 앞서 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를 주도하며 중국에 대한 공급망을 통제한다. 반도체는 5G, AI, 우주항공 등 모든 첨단기술의 꼭대기에 자리 잡아 다른 분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일본, 한국, 대만 등을 끌어들여 이른바 ‘반도체 동맹 (CHIP4)’을 만들어 중국에 반도체 공급을 통제하겠다며 집중 공격하는 이유다. 중국의 추월이 두려워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치졸함과 횡포에 큰 피해를 입게 될 나라는 한국이다. 앞에서 얘기했듯,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고,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수출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국이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는 반도체 전쟁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지난 10월 출판된 Chris Miller 교수의 Chip War: 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 (Scribner, 2022)를 읽어보기 바란다.
<미국의 유럽ㆍ아시아 안보 전략>
경제 침체보다 훨씬 심각한 게 안보 위기다. 경제 침체는 먹고사는 문제지만, 안보 위기는 죽고 사는 문제다. 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야욕과 횡포에 굴복하더라도 덜 먹으며 견딜 수 있겠지만, 외교 분야에서 미국의 호전성을 추종하면 전쟁에 휘말려 부질없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 세상에 미국처럼 전쟁 많이 하고 좋아하며 잘하는 나라 없다. 미국은 전쟁으로 나라를 세우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이 되고 세계 패권을 유지해왔다. 이런 전통과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은 1991년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 직후부터 유럽에서는 러시아를 압박하고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봉쇄하는 안보 전략을 발전시켜왔다.
<미국의 러시아 고립 전략>
미국의 러시아 압박 정책은 올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불렀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에 맞서던 바르샤바조약기구 (WP)가 와해되자, 미국은 나토를 해체하는 대신 나토 군사력이 동유럽 쪽으로 1인치도 확장되지 않을 것이라거나 러시아 국경 가까이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공언하고 확인했다. 그러나 1999년 소련의 동맹이었던 폴란드, 헝가리, 체코를 나토에 편입했다. 2002년엔 미사일 방어 체계 (Missile Defense)를 개발하기 위해 1972년 소련과 체결했던 ‘탄도미사일 요격미사일 제한 조약 (Anti-Ballistic Missile Treaty)’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2004년엔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7개국을 추가로 나토에 편입했다. 2007년엔 과거 소련의 일부였던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편입까지 추진했다.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 전쟁에 개입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2014년엔 우크라이나에서 쿠데타를 통한 정권교체를 부추기고 지원했다. 친러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 정권이 들어서도록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내전이 일어나고,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한 배경이다. 미국의 부추김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2019년 나토 가입을 헌법에 명시하며 러시아를 더욱 자극했다. 2021년, 과거 우크라이나에서의 쿠데타를 통한 정권교체를 부추기고 지원했던 미국인들이 집권세력이 되어 우크라이나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첨단무기를 대량 공급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편입을 다시 추진하며, 러시아 턱 밑 흑해에서 나토군의 대규모 해상 연합 훈련도 실시했다.
2021년 12월, 러시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지역에 군사력을 배치하며 미국에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편입하지 말고, 동유럽에 무기와 병력 배치를 중단하며, 러시아 인근에서 연합훈련을 중지하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거부하자,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나토를 1인치도 동진시키지 않을 것이라던 공언과 확인을 무시하고, 소련의 동맹이었던 동유럽뿐만 아니라 소련의 구성원이었던 나라들을 거쳐 러시아 접경까지 무려 1억 인치나 나토를 동진시키려는 미국의 호전성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불렀다는 말이다. 그래도 무슨 이유로든 이웃 나라를 침공해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가 나쁘다. 그러나 러시아를 끊임없이 자극하며 전쟁을 부추긴 미국은 얼마나 사악한가. 여기저기 군비 증강을 부추기며 세계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다음호 계속
글/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평화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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