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 그해 봄은 따뜻했다(1)(2)(3)
북경기지역사회에서 여성-리더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정기순 경기북부자연보호협의회 부회장의 병상 일기를 3회로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언제 추웠나 할 정도로 따뜻한 봄의 시작 길에 난 짐을 싸 가지고 병원(연세 OK)으로 들어왔다. 오늘 날씨를 보자면 하늘은 푸르고 드문 드문 흩날리는 구름들 사이로 너무나 따뜻한 햇살이 생명의 재탄생을 부추기듯 영상 15도를 웃도는 정말 오랫만에 맞이하는 쾌청한 봄 날씨다.
그러나 나는 낼 수술을 위해 병원에 들어와 창문 밖 일상을 살아가는 분주한 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상을 부러워하고 있다. 정확히 5년 전 이맘때 쯤 무릎 연골 시술을 했었다. 당시 주치의는 “연골이 많이 손상되어서 염증과 헤진 부분을 모두 긁어내 이제 30% 정도의 연골 만 남아 있는 상태니, 최대한 아껴 써서 60세 이후나 인공 관절을 하자”고 했었는데 5년 만에 내 연골은 바닥이 낫고 무릎 뼈를 위협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렇지만 그사이 의학은 끊임없는 발전을 통해 줄기세포 이식이 대중화가 되어 인공관절 보다는 회복도 안정성도 더 나은 무릎 뼈에 줄기세포를 이식해 자라게 해 연골을 대신해 뼈와 뼈 사이의 충격을 막아주고 완화 시키는 수술을 택해 오늘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이제 시작된 봄이지만 4월 말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 계절의 여왕인 5월을 대차게 맞이할 것이다!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아파 앉아야 하는 이 젊은 노인의 삶을 끝내리라는 굳은 결의를 천명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이렇게 병상 일기를 쓰게 된 건 많은 독자들이 관절의 고통을 약물이나 주사로만 의지하지 말고 정확한 진단과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100세 인생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또,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를 소망하는 마음에 내 이야기를 통해 공감도 하고 환자 당사자의 경험을 통해 실상을 알기 바라며 준비해보았다.
일단 연세OK 병원은 내과와 건강 검진까지 하는 전문 척추. 관절 병원이며 대부분의 의사분들이 젊고 친절하며 서울 의대, 연세 의대를 나오시고 수술 경력도 많으며 특히 인도에서 의사분들이 견학을 와서 의료 기술도 배우는 스승(?) 병원이기도 하고 작년에는 대학병원 정형외과 수련의들도 배우러 오셨다고 한다.
이번 수술은 작년 11월 초 갑자기 목 디스크가 터져서 팔이 끊어지는 통증에 행정부장께 연락드렸다. 병원은 응급으로 수술을 배정했고 지금은 너무 좋아졌기에 안심하고 다시 한번 믿어보려고 연세병원을 선택했다. 대학병원으로 갔다면 생각지도 못한 호사를 누렸죠! 비슷한 시기에 목디스크가 터진 지인이 대학병원으로 갔다가 그 고통을 이틀이나 견디다가 울면서 전화가 왔기에 제가 바로 입원. 수술까지 할 수 있게 해드린 일이 있는데 이 또한 행정부장의 환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그 고통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한 가지 더 소개하자면 지인 중에 혼자되신 A 언니가 있다. 그분이 얼마 전 길에서 넘어져서 갈비뼈가 세대나 금이 가고 팔도 실금으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으시게 되었다. 그런데 병원에 온 김에 오랫동안 지병처럼 앓고 있던 허리 디스크에 대해 상담했다. 그러니 친절하게도 형편이 어려워 수술을 엄두도 못 내시던 A씨에게 큰 돈 들이지 않고 수술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 줘 갈비뼈 치료가 다 끝나면 한번 고려해 보신다고 한다. 내 일은 아니지만 A씨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모습에 제가 다 뿌듯하고 감사하더라구요~~
제가 연세 OK 맹신자 같은 기분에 갑자기 웃음이 나오는데요(멋적음) 암튼 낼 수술을 위해 목욕재계하고 이제 금식에 들어가야하거든요~ 그럼 수술하고 또 만날께요! (다음 호 이어짐) 글/ 정기순 경기북부자연보호협의회 부회장
<정기순의 병상일기(2)>
<그해 봄은 따뜻했다>
북경기지역사회에서 여성-리더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정기순 경기북부자연보호협의회 부회장의병상 일기를 3회로 나눠 소개한다.(편집자 주)
올 3월 15일 오후 2시, 간호사가 이끄는 침대에 몸을 싣고 수술실로 향했다. 전날 밤 병실 샤워실에서 몸을 깨끗이 하고 당분간 못 씻겠다는 생각에 얼굴엔 팩까지 올려놓고 그 와중에 피부관리까지 하며 세밀히 준비를 했고 드디어 수술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분들과 특히 마취 선생님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줘 편안하게 잠이 든 것 같았다.
나는 수술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재왕절개 두번에 디스크 시술 등 여러 수술로 인해 익숙한 수술실이였지만 이번처럼 침대에 누워 국소마취에도 하나도 아프지 않게 잠든 건 이번이 처음인듯 했다.
이번 수술은 구멍난 무릎 연골을 정리한 후 뼈에 구멍 3개를 뚫고 그 속에 줄기세포를 심는 수술이였고 수술 후 4주 동안의 보조기 착용 후 서서히 재활을 거쳐 일상으로 돌아가는 수술이다.
금방 잠든 것 같았는데 내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고, 수술이 끝나 병실로 옮겨졌고 간호사들은 나를 에워싸고 분주히 수술 후 상황과 환자인 나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정신이 돌아왔고 무릎은 아무런 감각이 없었고 붕대와 간이 보조기로 칭칭 싸매져 있었다.
수술를 잘 마치고 깨어났다는 안도와 함께 당분간 거동이 불편할 것에 대한 생각에 맘이 좀 복잡했는데 이럴때 남편이라도 곁에 있었음 했지만 요즘은 병원이 통합 간호 병동 시스템이라서 보호자 또한 입실 금지다. 아플 땐 역시 가족이 최고인데 식구들 얼굴도 못 보니 마음 한편에 이상한 그리움이 올라오고 있었다.
수술한 하루가 가고 이틀 삼일을 맞이하며 회복을 향해 몸이 빠르게 적응되고 나아지는게 보였다.
사흘째 되던 날 주치의 선생님과 수술 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수술이 잘되어서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예전에 오늘쪽 인대가 끓어져 수술했던 자리에 통증이 잦고 붓는 일이 발생했다. 촬영을 했는데 인대가 다시 거의 끊어진 상태로 나와 무릎 수술 5일째 되던 날 같은 오른쪽 발목 인대 재 수술을 하게 되어 일주일 안에 두번의 수술를 하게 된 것이다. 무릎 수술만 했을 땐 견딜만 했는데 연속된 수술에는 장사가 없는지 한 이틀은 정신없이 잠만 잔 것 같았다.
이렇게 나는 두 번의 수술을 하고 2주를 꼬박 병원에서 간호사와 조무사들의 케어를 받으며 회복돼 가고 있었는데 가족의 보호가 없는 병원에서의 일상은 여느 때 병실과는 사뭇 달랐다. 가족 시중이 없어도 벨을 누르면 언제든 달려와 주는 시스템으로 인해 손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너무 편하게 있을 수 있었고 TV도 개인 침실 하나당 한 개씩 있어 옆 환자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언제는 이어폰으로 시간과 관계없이 볼 수 있는 너무 쾌적하고 사생활 침해를 받거나 주지도 않는 시스템에 너무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 병원을 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음을 뿌듯하게 여기며 보름이라는 긴 시간을 잘 버티고 드디어 내 가족 내 숨결이 고스란히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글/ 정기순 경기북부자연보호협의회 부회장
<병상일기>
<그해 봄은 따뜻 했다(마지막회)>
창밖으로 따스하게 비추는 햇살을 마주 보며 나는 갑자기 낼 당장 퇴원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며칠 더 있어도 되는데 갑자기 더는 병실에 있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이유엔 식사의 비중도 있었다.
여기 연세 ok 병원은 다를 어떠한 병원보다도 밥이 잘 나왔고 메뉴도 다양해서 다른 환자 분들도 아주 만족해하셨다. 병원 밥엔 햇살 같은 따뜻함을 못 느껴서 일까! 사람들이 왜 집밥 집밥 하는지 병실에 일주일 이상 있던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고 집에 간들 누가 나에게 맛난 밥상을 대접해 주는 것도 아닌데 집밥이 그리운지 좀 우습기도 했다.
어느덧 두 번의 수술과 보름간의 입원 기간을 마치고 보조기를 차고 목발을 짚으며 그리운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불과 2주 남짓 비운 집인데 뭐가 그렇게나 오고 싶었던지!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돌아올 집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가만히 생각이라는 걸 해보니 그렇게도 소망하는 우주여행을 간다고 한들 돌아올 집이 없이 계속 여행만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게 느껴진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잠시 생각한게 너무 멀리 간 것 같아 얼른 정신을 붙들고 너저분한 집을 정리를 했다. 병원 들어갈 때 10일 이면 될 것 같아 남편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 놓고 갔는데 4~5일 이상 경과가 더 되는 바람에 햇반 한 박스도 동이 났고 사다 놓은 이영자표 갈비탕도 다 소진된 상태여서 당장 오늘 저녁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막 퇴원한 다리를 목발이 간신히 지탱해 주고 있었기에 음식을 하는 건 여전히 무리였고 집밥은 다음을 기약하며 배달의 민족을 터치하며 치킨으로 집밥을 대신했다.
그 후 일주일에 한 두번씩 재활 치료를 위해 병원을 지속적으로 다녀야 했는데 작년 9월 말쯤 먼저 무릎에 줄기세포 수술을 했던 남편은 여전히 무릎이 불편하고 무리를 하는 날에는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길래 나는 재활에 최선을 다했다.
도수 쌤이 뭉친 다리 근육도 풀어주고 근육이 붙어야 나중 상처가 아문 후에도 무리가 덜 간다고 하셔서 정말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매일 운동을 반복하며 다리와 발목근육을 키워갔고 한 달이 지날때에는 빠르게 회복이 되어서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깁스도 푸르고 한쪽 다리에 무중력 보조기를 신고 일산 호수공원을 돌며 힐링을 하기도 했다.
의사 쌤이 정형외과는 수술 후 재활과 운동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계속된 통증과 후유증이 있다고 하셨는데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약 5cm 정도는 가능한 예쁜 구두에 한껏 멋도 낼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굳이 남편과 비교해 본다면 재활 치료와 운동을 병행한 나는 지금 너무도 예후가 좋고 바쁘다고 재활 치료도 운동도 하지 않았던 남편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약간의 통증과 무릎 각도의 불편함을 격고 있는걸 보면 치료의 끝은 수술이 아니라 꾸준한 재활 치료임을 증명하는 듯 하다. 운동선수들이 큰 수술을 받고도 재활에 성공하면 복귀 할 수 있다는게 뭔지 조금은 알 거도 같았다. 또 하나 느낀 게 하나 더 있었는데 역시 사람은 아플 때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수술 후 집에 돌아와 여전히 아프고 불편한 다리로 인해 거동에 제한이 있자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를 침대 머리맡에다 쌓아 놓고 내 옆자리 밑에 휴지통까지 갖다 놓고 움직임을 최소화 시켰다. 물론 물도 컵과 함께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게 배려하는 모습에 내가 남자 하나는 잘 만나 결혼에 성공했구나 하며 행복해했고 그 대가는 다리가 어느 정도 나아진 후 달라진 밥상으로 보상을 했다.
요즘 남편의 애정을 다시 확인한 후 나는 꾸준히 매일 끼니마다 압력솥에 누룽지가 있는 방금 한 밥을 해주고 있고 거기 다 보약 한잔까지~ ~
여자는 복잡한 듯 단순하다. 사랑과 행복을 느끼면 바로바로 대가를 지불하는데 사실 남자들이 이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얼마나 만고 불변의 법칙인지 좀 알고 실천하면 결국 부부가 다 행복해지는 것을~~ 이번 병상일지를 통하여 참 많은 것을 느끼며 또한 작은 것에 더 감사하고 감동받고 주는 시간을 보내서 병상 가운데 더 귀한 것을 깨달은 것 같아 감사하고 감사하다. 특히 별 이야기도 아닌 일에 공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독자분들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병상 일기를 마칩니다.
글/ 정기순 부회장(경기북부자연보호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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