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안철수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말씀하시되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고 하셨다. 사람들은 안철수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그는 현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며 그 외에도 직함만 20개를 갖고 있다. 그는 하루아침에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가 되었고 철옹성의 대권 주자 박근혜에게 일격을 가하며 유력 대통령 후보군에 들었다. 강연 요청도 1년에 3,000건 정도를 받지만 다 소화하지 못해 1년에 80회 정도 외부 강연을 한다. 그렇다면 왜 이 시대는 안철수에 열광하는가? 젊은이들이 가장 본받고 싶은 멘토로 꼽히는 이유가 뭘까? 사람들은 안철수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이(利)보다는 의(義)
적어도 사람들은 안 교수를 이(利)보다는 의(義)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보는 듯하다. 안철수연구소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V3로 유명한 국내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그는 V3 백신을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했다. 소리(小利)보다는 대의(大義)를 추구한 것이다. 검은 돈이 오가고 거짓, 불의, 부정, 불법이 난무하는 세상에 사람들은 그에게서 의로움과 신선함을 보게 된다.
그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서울시장 후보를 흔쾌히 양보하는 소위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리나 직위를 탐욕스럽게 추구하는 기존의 정치권과는 달리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소리(小利)를 접는 모습은 대중에게 충격에 가깝게 다가왔다. 이(利)보다는 의(義)를 추구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언행은 의로우셨고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예수의 의를 입혀주셨고 의인(義認)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의롭게 살아야 한다.
과연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의로운 자라는 말을 듣는가. 이(利)보다는 의(義)를 추구하는가. 부끄럽다. 대의(大義)를 버리고 소리(小利)에 급급한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지울 수 없다.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의를 회복해야 한다. 의로운 교회, 의로운 목사, 의로운 장로 소리를 들어야 한다. 교회는 숫자를 자랑하지 말고 의로움을 자랑해야 한다. 교세 통계 하나라도 의롭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의인 10명을 찾기에 목말라하신다. "너희가 안철수의 의보다 낫지 못하면…."
재(財) 보다는 인(人)
우리는 물질 만능주의, 자본주의사회를 살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져 간다. 돈 몇 푼에 사람의 생명을 해친다. 재물이 또 다른 주인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다. 물질이 주인이 되고 사람은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은 안 교수를 통해 사람 중심의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는 적어도 돈에 욕심을 내는 사람 같지 않다. 그는 의사요, 박사요, 의대 교수까지 됐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몇 사람 중 하나다. 안 교수가 여러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돈이나 욕심을 위해 살지 않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교수가 됐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다 보니 가르치는 학생 말고도 많은 학생들이 면담 신청을 해 온다. 거의 절반쯤은 그를 찾아와서 말하다가 운다고 한다. 그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 교수를 좋아한다. 또한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때 안 교수는 사장 방을 없애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된다. 사장이라고 해서 높은 사람이 아니며, 여건만 다른 사람인데 뭐 따로 있을 필요가 있겠나"고 말했다.
동등한 관계에서 사람대접을 받은 직원들의 사기가 충천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인류 구속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자금을 모으지 않고 사람을 찾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사람을 세우셨다. 과연 교회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가. 물량 주의에 빠져 가는 교회 모습을 본다. 인(人)보다 재(財)를 앞세우다가 물질 시험에 든 교회가 많다. 사람을 도구화 한 부자 교회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면 틀린 말일까. 누구든 교회에 출입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자.
자(自)보다 타(他)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심화해 가는 세상을 살고 있다. 배불러 죽는다고 하면서 배고파 죽는 사람을 나 몰라라 한다. 남의 암보다 내 감기를 더 힘들다고 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것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안 교수의 말이다. "양극화의 해소는 꿈같은 이야기고 최소한 심화되는 것만이라도 멈추게 해야 한다. 공정 사회, 상생이 가장 중요한 화두다. 그런데 화두만 꺼내고 후속 조치가 없으면 분노만 더 커진다." 그는 적어도 남의 아픔을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작은 교회의 아픔을 안고 고민하는 큰 교회가 얼마나 될까. 그는 '청춘콘서트'라는 창구를 통해 시대적인 고민을 떠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했다.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리더를 찾던 중에 소통을 실천하는 안철수가 등장한 것이다. 안철수연구소의 사장인 그가 120여 명의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회사의 핵심 가치, 존재의 이유,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여러분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주식을 여러분에게 무상으로 나눠 주기로 했습니다." 이보다 더 남을 생각하는 자세가 어디 있는가. 예수 정신은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다. 예수님은 남을 먼저 대접하라고 하셨다. 또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하셨다. 심지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이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남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다(요일 3:16).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가. 부끄럽다. "예수 믿는 사람이 더 개인주의자이고 이기주의자다, 더 인색하다!"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안 교수가 그리스도인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이(利)보다는 의(義)를', '물질(財)보다 사람(人)을', '나(自)보다 남(他)을'. 이 가르침이 예수의 가르침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예수 정신이 아닌가? 안 교수의 자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있어야 할 자리다. 안철수를 향한 환호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칭송이다.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이 서로 유무상통하며 천국 공동체를 실현했던 초대교회 정신이다. "저 사람들을 보라." 세상과 다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했던 초대교회를 배워야 한다. 왜 전도가 안 된다고 하는가? 왜 사람들은 교회를 외면하는가? 사람들이 환호하는 안철수에게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안철수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글/신만교 목사(화평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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