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탕 잘 하는 집, 어디 없나요?
‘뼛골이 시리다’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낀지 이미 오래다. 특히 요즘같이 기온의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는 온 삭신 마디가 서걱거리면서 그 말의 참뜻을 체감하게 된다.
나이 들어가면서 몸에서 칼슘이 왕창 빠져나간다니 곰국이나 도가니탕 같은 음식이라도 자주 먹어줘야 한다는 통설쯤은 누구나 다 아는 터. 하지만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풍족한 나라에서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 또한 일반화된 사실인 것을. 무릎뼈 사이로는 이미 한 겨울이 왔건만 뿌연 육수가 진한 설렁탕 한 그릇 맘 놓고 사먹지 못해서야 어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겠는가?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는 병든 아내가 설렁탕 한 그릇 먹는 걸 소원하다가 끝내 먹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김 첨지의 절규가 다시 들린다. 모든 게 다 때와 찬스가 있는 법, 모처럼 운 좋게 일당을 족히 벌었으면 빨리 집에나 들어갈 일이지, 술집에서 호기를 부리며 해찰을 하다가 설렁탕을 사가지고 갔으니…. 영화 한 편으로 온 나라가 들끓어대니 정부에서는 뒷북을 치면서 드디어 그 진상지인 학교를 폐교시키기로 결정했다.
뒷북이라도 강하게 쳤으니 다행이다. 더불어 영화의 힘, 소설의 힘이 아주 세다는 게 증명되어서 든든하고 좋은데 신(神)의 이름이 더렵혀지는 건 슬프다. 신이 어디 ‘나이롱’ 담요인가? 영화 <도가니>를 보면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했다는 예수의 말씀은 잠시 접어두고, 범국민적인 분노를 공감하고 공유했다.
영화 속의 위선자들은 신을 마치 자신들의 추태를 마구잡이로 덮어주는 ‘싸구려담요’ 취급을 하고 있었다. 영화 <밀양>에서도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 자신은 이미 신에게 회개하고 용서 받았다고 평온한 얼굴로 오히려 피해자 쪽을 연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용서하기 전에 누가 당신을 먼저 용서했느냐고 절규하던 여자 배우의 소름 끼치는 연기가 다시 되살아났다.
영화 <도가니>에서도 어린 민수가 수화(手話)로 소리친다. “내가 용서를 안했는데 누가 용서를 해요?” 장애어린이들을 성추행하고도 특정한 집단과 종교의 ‘장’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방패로 삼는 ‘막가파’ 인물을 향해서, 그들을 더 편 들어준 권력집단을 향해서 사회적 공분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굳이 정의를 운운하지는 말자. 항상 불편한 진실들을 외면해온 우리들이 아닌가. 솔직히 내 개인과 가족의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라면 별 관심도 없으니까.
영화 <도가니>의 원작가인 공지영은 실제 벌어진 사건이 영화나 책에서 다뤄진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진실을 개들에게 던져 줄 수 없다!’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기자나 작가, 교사와 간사, 그리고 배우 공유와 감독 황동혁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는 추악한 인간의 행위를 스크린을 통해서나마 똑똑히 목도할 수가 있었다.
“사람은 자기 존엄성이 지켜질 때 한 우주의 주인일 수 있고 우주 자체일 수 있다.” 영화 <밀양>의 원작인 소설 <벌레 이야기>의 작가 이청준이 말하고 있다. 섭리자의 사랑 앞에 사람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과 권리란 무엇인가! “살인자가 그 아이의 엄마 앞에서 어떻게 그토록 침착하고 평화스런 얼굴을 하고 있느냔 말이에요. 살인자가 어떻게 성인 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에요. 절대로 그럴 수가 없어요.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엔 전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이는 소설 속의 아이 엄마가 토해내는 말이지만 실은 사법부 쪽에서 먼저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가 실제 어린이 살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듯이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도 장애아 특수학교에서 벌어진 악행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묘하게도 두 이야기 속에서 신(종교)이 개입하고 있다. 인간들, 정말 비겁하다! 신의 옷자락으로 머리통만 가리고 투명인간이 된 줄 안다.
찬바람이 불어오니 육신의 정기도 쑤욱 빠져나간다. 걸음걸이도 느려진다. 나이 들면 그게 무지 서럽다. 그렇다고 보양식에만 사활을 걸 수가 없다. 우리 동네 오백년 된 느티나무도 지금 겸허히 낙엽을 떨어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백 년도 안 된 어떤 인간은 신의 섭리를 거부하며 살아있는 어린 육신을 ‘잡아먹고’ 싱싱한 기를 받겠다고 몸부림을 친다. 아, 토할 것 같다. 이렇게 속이 허우룩할 땐 뜨끈한 도가니탕이나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다. 영화 <도가니>, 엊그제 대통령께서도 보았다고 한다.
황영경교수의 문화 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황영경 교수(신흥대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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