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시선을 넘어서: 개발 독재에 대한 비판
언제 부터인가 잘 산다는 것의 지표가 한국인에게 있어서 서양인들의 지표와 같은 것이 되었다. 지금 지구상에서 자본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수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의 기준을 기술의 발달에 따른 편리함과 풍요에 두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몽골이나 인도, 아프리카 그리고 기타 이슬람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아직 문명화 되지 못했으며 위생적으로 문제가 많아 빈곤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으로 풍부하지 못하기에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여 돕기도 하고 때로는 선교사들이 선교하기 위해서 낮선 땅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잘 산다는 것 혹은 문명이 반드시 이러한 관점에서 정의되어야만 할까? 세계 여러 나라에는 각기 고유한 문화와 문명이 있는데, 서양 근대 이후 일반화된 문명의 기준을 가지고 모든 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주지하듯이, 인도 문명, 중국 문명, 이슬람 문명, 이집트 문명 등 수 천년 동안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형성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서양인들이 들어와 이러한 모든 전통을 쓰레기처럼 버리도록 강요하였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시선에 따라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며 버리고 있다.
한국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구인들의 가져다 준 국제화 표준을 따라감으로 명실상부 ‘세계 시민’이 되어가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서구의 시선을 우리의 시선으로 바꾸며 살아가고 있다.
“미션”이라는 영화와 영화 “아바타”라는 영화를 보면, 문명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점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토속인들과 더불어 서양의 신식 무기에 맞서 싸우는 신부들의 싸움과 원주민들과 더불어 강한 현대식 무기의 서양인들과 싸우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서양인들의 오만과 편견을 읽을 수 있다. 원주민들의 문화와 문명을 완전히 무시하는 서구인들의 오만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또한 “슬픈 열대”라는 책에서 일방적인 서양인들의 시선을 비판하고 있다. 후에 레비 스트로스는 신화와 관련된 저서에서 고대인들의 신화 속에서도 이미 현대 과학적 식물분류법이 체계적으로 집대성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신화적 세계조차도 현대 과학적 입장에서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인도의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맞서 비폭력 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간디의 문명에 대한 이해를 보면, 오늘날 서양의 근대화를 수용하면서 그것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해볼만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간디는 문명의 기준을 도덕성의 진보에서 보고 있다. 서구인들은 문명을 물질적 진보에 있다고 보고 있지만, 이것은 아주 잘못된 관점이라는 것이다. 간디는 결코 인도가 결코 서양의 모델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다. 인도가 오래 동안 간직해 왔던 정신적인 가치와 도덕적인 가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문명의 기준을 도덕성의 진보에서 보고 있다. 이 세상 권력에 의지하기 보다는 알라 한 분만을 인정하고, 물질적 풍요보다는 절제의 미덕을 발휘함으로써 가족의 윤리적 규범에 따라 사는 것을 문명의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간디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생태계의 파괴와 인간성의 상실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목소리는 무시할 수 없는 귀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 서서 우리가 가진 소중한 전통적 지혜는 없는가하는 생각을 해보자. 인격의 성숙에서 학문의 기본을 보았던 조선조 선비들의 생각들은 오늘날 전혀 의미 없는 사색당쟁의 산물일 뿐일까? 스승과 제자 사이의 친밀한 관계가 중요시 되던 서당의 전통은 오늘날 학원이나 학교가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돈이 아니라 단순히 서로 돕자는 의미에서 수행되었던 두레나 계 등의 모임 등도 물질자본 못지않은 사회자본의 가치로 인정될 수 없을까?
한 나라나 한 지역 사회 개발이 그 곳의 가치를 높여주고, 삶의 질을 증가시킨다는 관점은 개발의 대상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 채 무시하고서만 가능한 논의이다.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땅이나 집은 단지 사고 팔 수 있는 것 즉 경제 가치 이상이다. 고생해서 이룩한 평생의 결과물들과 주변 이웃이 있고 그들과의 정이 있으며 이야기와 전통이 있어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문화가 숨 쉬고 있는 곳이 바로 마을이고 동네다. 지구적 차원에서든 국가적 차원에서든 더 늦기 전에 서구인들의 일방적인 시선인 개발독재의 시선에서 벗어나 원래 살고 있는 주민들 즉 원주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서기원(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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