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통일에 다가가는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돌아보는 6.15선언과 10.4선언한 대통령 기일에
지구상에 유일한 마지막 분단국인 한반도에 반백년을 넘게 정권을 잡았던 반공 수구 보수 세력에서 민주 개혁진보세력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 이어, 노무현 참여정부가 탄생되어, 한반도는 평화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정권을 재재창출을 이뤄내지 못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평화의 기운보다 전쟁의 기운이 강하게 밀려오고, 지난 보수정권의 전형을 그대로 유지하며 정권이 이어갔다. 2년 전, 뜻하지 않던 바로 직전 노무현대통령이 세계에서도 드문 죽음이었다. 소위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국내외서 놀라고 전 국민은 슬픔에 잠기게 되었다.
노대통령의 죽음에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있어서는 안 돼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오죽하면 이라는 예단도 있었고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상황이었다는 추측도 많기에 국민들의 애도는 더욱 깊었다. 지난 1주일 전, 봉하마을은 2주기 추도식 준비가 한참이었다.
추도일 전에 미리 다녀간 추모인사들이 많았다. 분단 66년에 53년의 장기 집권한 반공수구 보수정권에서, 어렵게 개혁진보 평화세력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던 1997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 비록 분단된 한국이지만 세계만방에 민주주의를 과시하고 주목받았다.
그리고 이어 2002년 12월 정권재창출하여 참여정부가 탄생하였다. 반백년 만에 단단한 반공 보수 세력의 독재정권에서, 야권으로 정권이 교체되어 그동안 적대관계로 같은 동포끼리 원수가 되어 살아온 세월이 너무도 길었다. 정권교체는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으로 이끌어 내고 역사적인 6.15남북정상선언을 함으로써 국내외 큰 반향을 얻어냈다.
평화적 정권교체는 육해공이 모두 뚫리고 남북이 화해와 협력이 이뤄져 활발한 남북교류가 펼쳐지더니 금강산관광이 이루어지고 개성공단이 설립되어 속속 공장이 들어섰다.
남북은 국내외적으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경기에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경기를 하여 분단국의 설음을 달래곤 했다. 국민의 정부가 정권재창출을 하여 참여정부가 들어섰다.
당시 국민들은, 수구 보수들의 반격이 가해졌지만 그러나 어렵게나마 정권재창출을 해내고 있었다. 이는 너무도 긴 분단으로 이산가족들의 만남으로 이별의 슬픔과 한을 달래고, 그리운 고향의 가족들을 제한적이나마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갈망했던 남북교류와 방문은 자주 이뤄지고 금강산관광을 백만이 넘는 인원이 다녀오고 이어서 개성관광이 이루어져 활성화 되었다. 개성공단의 활성화는 100여개에 달하는 기업체가 입주하여 남북이 상생하는 경제협력이 이루어졌다.
4만 명의 북의 여성인원이 공단에서 일하고 있었다. 남북교류는 더욱 활기를 띠고 많은 남북 상품들이 교류되고 그동안 닫혔던 휴전선 비무장 지대를 통과하는가 하면, 납북이 비난만 일삼던 상호비방을 금지해 철거하였다. 정례적인 남북 체육교류는 평양과 서울에서 축구 교류전 등을 여는가 하면 단일팀으로 국제경기에 임하여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남북교류 10년 만에 엄청난 서로 간에 이해와 증진이 이뤄지고 그동안의 불신을 거두었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집권기간이, 2007년 12월 선거를 맞이했다.
여야는 심한 경쟁의 선거전에서 결국 지난 수구 보수 세력이었던 야당이 집권하게 되었다. 결국 계속 정권재창출을 하지 못한 개혁진보정권은 타격이었다. 여당이 된 한나라당은 퍼주기, 잃어버린 빼앗긴 10년을 찾았다며, 그동안 남북이 선언한 6.15와 10.4선언을 묵살하고 오직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만을 주장하고 나섰다. 더구나 인수위는 통일부를 없애는 방안에 대해, 많은 평화통일 단체와 국민들의 비난을 받더니 결국 유지하기로 했다.
엠비 정권은 노골적으로 6.15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오직 노태우 정부 때 남북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만을 실천하자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선거 공약한 '비핵개방3000'은 북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남북은 그동안 쌓아온 신뢰에 금이 가는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남북관계는 악화로 금강산과 개성관광이 중지되고, 겨우 개성공단만이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
금강산에 면회소 건물까지 건립하여 보다 자주 안전하게 한의 이산가족들이 60년의 기다림의 회포를 푸는 곳인데도 엠비 정권에서는 단 한차례 남북이산가족이 상봉하고 다음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반민족적인 처사다. 아무리 철천지원수라도 인도주의적인 면에는 인색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정부는, 남북문제마다 조건을 달아 진실로 실행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갖게 했다.
자존심이 강한 북의 동포를 꼭 그렇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지난 집권 초에 6.15외 10.4선언을 제외하고 남북기본합의서만을 노래하더니, 현실은 그 합의서마저 꺼내지 않는다.
엄격히 보면 "남북기본합의서"는 북은 의회에서 결의되었으나 남에서는 국회에서 결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내용은 6.15와 10.4선언보다 더 진취적인 남북 간의 기본합의 내용이 있지만 그 합의를 이행하려면 결국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그 합의서 이행이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는 정부였다.
1972년 7.4공동 선언과 같은 뜻있는 선언으로 합의였지만, 그 7.4선언은 결국 박정희의 3선 개헌을 넘어 영구히 집권하는 유신헌법을 만들고 말았던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러니까 7.4선언을 독재자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대통령직을 갖도록 하는 무서운 헌법이었음을 기억한다. 그러기에 업보로 인해 아내도 자신도 총탄에 쓰러진 비극이다.
오늘날 아니 지난해에 천암함 사태와 연평도 사건도 따지고 보면, 2000년 6.15선언과 2007년 10.4 납북선언이 제대로만 시행되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사태였음을 알 수 있다.
서해평화지대의 평화공동사업은 남북이 공동어업으로 중국의 불법어업을 방지하고 납북이 상생하는 경제실용이 저절로 이뤄지는 옹골진 사업이다.
그런데도 남북관계에 평화가 아닌 전쟁기운만을 잔뜩 넣고 있는 엠비 정권의 정책이, 66년의 분단에 대한 역사인식도, 남북평화통일에 대한 정책도 부재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3년 동안 반민주 반 평화 반통일, 이런 형태는 역사에 준엄한 심판을, 아니 후대의 심판이 분명 있을 것이다.
(중략) 너무나도 긴, 지구상에 분단국 한반도는 이제 내년이면 한반도에 평화기운이 넘치는 그런 기회가 꼭 오도록 남북 7천만 동포들이 화합해야 한다. 이 길이 우리의 선대와 후대들에게 떳떳하게 남길 귀중한 유산을 물려주었으면 하는 소원이다. 우리가 조국과 민족 앞에 바른 역사를 위해 행동하는 양심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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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전/ 작가(소설가. 수필가. 서예가) 칼럼니스트. <에세이21>사무처장, (사)평화연대 상임고문. 남북경협포럼 전문위원,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사)청소년남북교류연맹 자문위원. 저서: 소설집( 못다 핀 꽃) 수필집(도라산의 봄) 에세이집(평화, 그 아름다운 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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