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주는 혜택을 이용하고 순응할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삶의 지혜
쑥범법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나이 50이 넘은 사람들이라면 생생히 기억 할 것이다. 이런 보릿고개는 5~60년대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 농가생활에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어디 이때만 어려웠을까? 이 시기만 되면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 배 곪지 않게 하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 그중 하나가 초근목피(草根木皮)다. 말 그대로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란 뜻으로 곡식이 없어 배고픔에 허덕일 즈음 산나물이나 칡, 혹은 나무껍질 벗긴 것 따위로 만든 험한 음식을 이르는 말이다. 봄날의 긴 하루를 넘기기 위해서는 배가 너무도 고팠다. 그래서 그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산이나 들에 가서 나물을 채취한다.
그리고 채취한 나물로 나물죽을 쑤어서 한 끼의 식사를 때웠다. 말이 좋아 죽이지 멀건 국물에 나물 건대기 몇 개 그리고 쌀 몇 알 떠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이런 죽이라도 세끼를 채울 수만 있다면 다행이었다. 어쨌든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 부모님들은 쑥을 뜯어다가 쑥국 쑥범벅 등을 만들어 자식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다.
오늘은 지난 보릿고개의 상징처럼 들리는 배고픔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픔도 세원이 지나면 추억이 되듯이 그 아련함을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쑥범법은 지방에 따라 쑥버무리, 쑥설기 혹은 쑥털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은 쑥범벅으로 통일해 보자. 이것은 이른 봄의 어린 쑥을 뜯어서 날것 그대로 멥쌀가루와 섞어 시루에 찐 떡으로 쑥이 많이 생산되는 3월 무렵에 먹는 시절 음식으로, 향긋한 쑥내음 때문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별미다.
곰이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먹고 사람으로 되었다는 우리나라의 개국설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전부터 쑥은 우리민족과 인연이 깊었다. 이처럼 쑥은 신비한 약효를 지니는 식물로 예로부터 귀중히 여겨왔다. 쑥은 약으로 쓰기도 하여 약쑥이라고도 부르는데, 줄기와 잎을 단오 전후에 캐서 그늘에 말린 것을 약애(藥艾)라고 해 복통, 구토, 지혈에 쓰기도 하며, 잎의 흰 털을 모아 뜸을 뜨는 데 쓰기도 한다.
잎만 말린 것은 애엽(艾葉)이라고 하며, 조금 다친 약한 상처에 잎의 즙을 바르기도 한다. 한국 곳곳의 양지바른 길가, 풀밭, 산과 들에서 자란다. 옛날에는 말린 쑥을 화롯불에 태워 여름철에 날아드는 여러 가지 벌레, 특히 모기를 쫓기도 했고, 집에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오에 말린 쑥을 집에 걸어두기도 했다.
쑥범벅은 지방마다 먹는 시기가 조금씩 달랐다. 충북에서는 이른 봄 농가에서 못자리할 때 해먹었다. 농가에서는 모판을 만들기 위해 볍씨를 물에 담근다. 그리고 모판을 하고 남은 볍씨를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여기에다 파릇파릇하게 돋아난 쑥을 깨끗이 씻어 함께 버무리고 소금간을 약간 하여 시루에 쪄서 먹었고, 호남 지역에서는 이른 봄에 쑥을 캐어 말려놓았다가 단오 무렵이 되면 멥쌀가루를 묻혀서 시루에 찐다. 쑥은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식물로 자생력이 강하고 향기가 독특하며 어느 음식과도 친숙하게 어우러지는 재료이다. 이러한 쑥을 넣어서 만든 쑥버무리는 봄과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음식이라 할 만하다.
오늘은 입는 것도 먹는 것도 넘쳐나고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배우느라 기계와 소통하고 가족도 자신도 잊어버린 채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팟팟한 삶 속에서, 쑥범법을 생각하면서자연이 주는 혜택을 이용하고 그것에 순응할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삶의 지혜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 번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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