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교수의 문화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늦어도 12월에는…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은근히 폐쇄적인 장소에서 처음 본 남자가, 혹은 여자가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면? 힘이 잔뜩 들어간 강렬한 눈빛이거나 힘을 완전히 뺀 무구한 눈빛을 간절하게 쏘아대면서 다시 한 번 더 속삭여 온다면? 아마 우리들의 십중팔구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거든요!” 하면서 그 상대를 ‘제비’ 나 ‘꽃뱀’족이라고 단정할 것이다.
산전수전에다 무량수전까지, 겪을 만큼 겪은 우리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겠는가.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로 처음 만난 남자의 그 말 한마디에 바로 ‘꽂혀서’ 어엿한 가정을 버린 여인이 있다. 낯선 남자 묀켄을 운명적으로 찾아온 사랑이라 확신했기에, 어린 아들까지 두고 따라나섰던 여인 마리안네.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두 달 남짓의 외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완치가 불가능한 치명적인 삶의 병세를 앓고 견뎌간다. 늦어도 11월에는 당신을 다시 데리러 가겠다는 남자의 언질을 연금보험증서처럼 가슴에 품고서. 독일 작가 한스 에리히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은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서 멀쩡한 가정을 깬 한 여자의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이고!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얼어죽을 ‘사랑노름’? 하지만 가난하고 몸도 약한 고물상 남자, 오브 아저씨를 보면 사랑이 결코 배부른 자들만이 즐기는 꽃놀이가 아닌 것이다.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메이 아줌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오브 아저씨의 일상은 빈 콩깍지처럼 메말라 간다. 이 아저씨의 사랑병이 더욱 치명적인 것은 메이 아줌마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여자아이 서머의 눈에 비친 어른의 이런 ‘사랑병’ 증세는 난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미국 작가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아』는 이 세상에서 ‘약한 사람’들의 사랑도 충분히 고귀하고 숭고하다는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다. 오브와 메이 부부는 트레일러 집에서 사는 경제적인 하층민들인데 자식이 없어서 먼 친척 소녀 서머를 입양했다. “아줌마는 오직 사랑뿐인 커다란 통 같았다. 오브 아저씨와 내가 몽상에 빠져 헤매고 다닐 때도 아줌마는 항상 이 트레일러에서 우리가 돌아와 아늑하게 쉴 수 있도록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방궁이든 달동네 단칸방이든 세상의 모든 집들, 아랫목이 따듯하고 편안한 까닭은 안주인이 뿜어내는 가족애의 훈기 때문이다.
메이를 잃고 방황하는 남은 가족, 서머와 오브에게 생기를 되찾아주는 인물이 나타나는데, 크리스터라는 괴짜소년이다. 독특한 사연이 담긴 사진 모으기가 취미인 꾀죄죄한 차림의 그 아이는 작년 11월부터 오브 아저씨의 고물상 주위를 얼쩡거렸다. “서머. 그 무거운 돌덩이 좀 내려놔. 그렇게 무거워서 어떻게 사냐?” 쪼그만 녀석이 보통내기가 아니다. 메이 아줌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애늙은이가 다 돼버린 서머에게 이 괴짜소년은 비타민 같은 존재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은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기로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서머는 11월에 나타난 소년 크리스터를 통해서 메이 아줌마의 메시지를 듣는다. 모든 것을 다시 잃을까봐 늘 불안해하는 소녀 서머와 매사에 긍정적인 소년 크리스터, 이 어린 두 남녀 커플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존재들이다.
먼저 소개한 『늦어도 11월에는』에서 남자는 결국 자기가 한 약속대로 11월에 다시 여자를 찾아왔고, 그 여자의 집에서 당당하게 또 한 번 여자를 데리고 나간다. 아니, 이 남자, 마치 자신이 부은 적금통장을 깨듯이 남의 가정을 두 번씩이나 깨뜨린다. 그런데 그 두 남녀가 함께 타고 가던 자동차가 여자네 동네를 미처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사고가 나서 그들은 바로 죽어버린다. 참, 작가가 무슨 저승사자도 아니고! 이렇게 쉽게 두 주인공들을 ‘처치’해 버리다니. 어쩌면 두 남녀는 범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운명에 이끌려서 자폭한 것일 수도 있겠다.
11월의 마지막 날, 문득 문학작품 속에서 11월에 찾아온 두 남자, 묀켄과 크리스터를 떠올려본다. 이처럼 대조적인 두 가지 스타일의 접근법, 어느 쪽이 더 상대를 휘어잡을까? 어쨌든 이 해가 다 가기 전, 늦어도 12월에는 고난과 가난을 함께 헤치고 나갈 초인 같은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고대해 본다. 백마 타고 나타난 왕자가 아니더라도, 희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그 사람!
황영경교수의....
글/ 황영경 교수(신흥대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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