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9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꾸르실에서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간 대화운동과 갈등극복의 과제’란 주제로 모인 세미나에서 오강남 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가 발제한 ‘심층에서 만나다’(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갈등극복의 과제를 중심으로)를 정리 요약했다.(편집자 주)
불교와 기독교는 현재 한국 인구의 절반 정도를 그 신도로 가지고 있는 한국 최대의 종교다. 한국 인구 절반 중에서 다시 절반 정도는 불교도고 다른 절반은 기독교도다. 이런 상황이라면 두 종교가 협력하고 대화하는 관계를 맺는 것이 평화스럽고 조화스러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불교와 기독교의 관계는 직접적인 접촉이나 의미 있는 만남이 없는 상태로 독자적으로 지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 자기 나름의 고립된 울안에서 독자적인 생존과 발전을 꾀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자기 영역에서 독백만을 계속할 뿐 한 번도 상호의 이익을 위해 건설적이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셈이다.
오늘처럼 복잡한 사회에서는 어느 한 종교가 사회의 모든 문제에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모든 종교는 이 시대의 도전에 응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불교도와 기독교도는 상대 종교를 대할 때 모든 것을 진위, 선악, 시비, 우열 등과 같이 단순한 이분법으로 판가름하던 옛 패러다임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자기만 옳고, 참되고,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대신에, 모두 동역자·동반자로서 함께 한국 사회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윤리적, 종교적 병리와 불의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데 협력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 그렇게도 만연한 자연훼손과 파괴에서 오는 생태적 문제를 경감하는데도 물론 힘을 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폴 닛터가 말하는 ‘구원중심적(soterio-centric)’ 관심에 모두 함께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신학자 한스 큉(Hans K?ng)은 ‘세계적인 윤리 없이는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종교간의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가 불가능하고, 종교 간의 대화 없이는 종교 간의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한국 종교계와 사회에서보다 이 말이 더 적절히 적용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현재 한국은 종교적으로 가장 다종교(多宗敎)적인 사회 중 하나다.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종교 간의 긴장과 갈등에 대해 다 같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불교도와 기독교인들은 모두 7세기의 위대한 신라의 사상가 원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생각한다. 원효는 그의 유명한 화쟁론(和諍論)에서 일종의 다원적 시각을 강조한다. 그는 실재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가 당면하는 여러 가지 상충되는 범주들, 예를 들어 있음有(유)과 없음無(무) 빔空(공)과 몸體(체) 등을 다룰 때, ‘어느 한 쪽의 견해에만 집착하면’ 우리는 결국 실재를 분명히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어느 한 면을 절대화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양쪽을 보완적으로 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원효가 제창한 이런 다원주의적 시각이 한국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에서 기본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미국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인 토마스 머튼은 ‘만약 서양이 동양의 정신적 유산을 과소평가하거나 등한시하기를 계속하면 인류와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는 비극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물론 한국의 기독교가 더욱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할 것이지만, 불교의 정신적 전통에서 피상적인 것에만 집착하고 고집하는 불교인들도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 정말로 깊은 면을 과소평가하거나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기독교인들도 새로 받아들인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국의 정신적 유산을 과소평가하거나 등한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 불교가 한국 기독교 모두에게 독백과 고립적 발전의 시대는 이미 종언을 고한 셈이다.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틱낫한 스님은 예수와 붓다는 ‘한 형제’요 기독교와 불교는 인류 역사에 핀 ‘아름다운 두 송이 꽃’이라고 하였다.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 만나 이야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상호 만남과 영향이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두 종교는 좀 더 방법론적으로 확실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만나 대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오강남 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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