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교수의문화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잃어버린 내 목걸이!
바다에 사는 눈 먼 거북이 한 마리가 수면 위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있다. 나무로 만든 목걸이 하나도 바닷물 위를 떠다닌다. 거북이가 이 나무 목걸이를 목에 걸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행운은 이처럼 망망대해에서 눈 먼 거북이가 우연히 떠다니는 나무 목걸이를 잡았을 경우에 비유된다. 맹귀부목(盲龜浮木) 또는 맹귀우목(盲龜遇木)이라는 고서성어의 어원을 캐어보면 이 같은 눈 먼 거북이의 ‘목걸이’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목걸이라고 다 같은 목걸이가 아니다. 어떤 여자는 목걸이 한 번 목에 걸었다가 십 년의 세월 동안이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높은 분이 주최하는 저녁 야외파티에 초대되었지만 변변한 옷과 장신구 하나 없는 여자는 초대장을 팽개치며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다. 왜 파티란 데는 예나 지금이나 늘 여자들의 패션쇼장이 되는지?
여자의 남편은 할 수 없이 ‘꼬불쳐’ 놓았던 돈을 내놓는다. 덕분에 옷은 해결되었지만 몸에 붙일 장신구가 없으니 여자는 또 차라리 가지 않겠다고 남편을 들볶는다. 가든가, 말든가 알아서 해! 대다수의 남편들은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내건만, 이 여자의 남편은 참 낭만적이다. 생화를 꽂고 가면 될 게 아니냐고 아내를 달랜다. 남편의 말마따나 장미꽃 두 송이쯤을 가슴에 꽂고 가면 더 독보적으로 멋있을 텐데, 여자는 그런 건 돈 많은 여자들 틈에서 더 굴욕적인 일이라고 싫어한다. 그래도 남편은 인내심이 대단하다. 여자의 동창에게 가서 보석을 빌려보라고 아이디어까지 내놓는다. 이것은 프랑스 작가 귀 드 모파상의 소설, <목걸이>의 내용이다.
여자는 친구에게서 빌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파티에 가서 흠뻑 쾌락의 시간을 즐긴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 친구의 목걸이를 귀가 길에서 잃어버린다. 그렇게 유난을 떨어대더니 결국 여자는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하급관리인 남편의 수입으로는 그런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 같은 건 평생가야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들은 전재산을 저당 잡히고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변통을 하고 고리대금업자에게까지 빚을 내어서 똑같은 목걸이를 사다가 친구에게 돌려준다. 이들 부부는 이제부터 빚 갚기에 여생을 ‘올인’해야 한다. 신은 결코 이 가난하고 허영심 많은 여자의 편에 서지 않았지만, 대신 대범하고 선한 남편만은 여자의 옆에 머무르게 허락한다. 남편은 여자를 구박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빚을 갚기 위해 남의 가게에서 장부정리를 해주는 아르바이트까지 한다.
참, 아무리 소설이지만 이렇게 착한 남편이 있기는 있다. 필자가 여태까지 보아 온 웬만한 소설 속의 남편들은 모두 아내에게 절대로 인정을 베풀지 않는 야박한 인물들이었다. 특히 한국 소설들은 거의가 그랬다. 하지만 뭐, 소설은 시대를 닮아간다고 하니까 앞으로는 점점 착한 남편이나 남자가 등장하기를 소망해 본다.
다시 그 부부 얘기로 돌아가면, 그들은 집칸을 줄이고 비참한 절약생활을 감행한다. 여자도 함께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한 결과 이자의 이자까지 다 쳐서 빚을 갚는다. 그 각고의 세월 동안 여자는 할머니가 다 되었다. “아…! 가엾은 마틸드, 어째 이리 변했어.”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 목걸이의 주인인 친구는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였다.
“다, 너 때문이었어!” 하지만 “결국 다 해결했어. 내 마음은 후련해.” 이렇게 ‘쿨’하게 끝났다면 이 소설은 기껏 사필귀정이나 인과응보를 주제로 하는 고전류 중의 하나이겠으나 그 반전의 묘미가 허탈하다 못해 참으로 ‘쿨’하다. 보석을 탐한 욕망의 죄과로 피폐해진 여자의 삶은 소설의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구성된 것이다. “아, 가엾은 마틸드! 내 것은 가짜였어. 기껏해야 5백 프랑밖에 안 나가는…….” 친구의 그 목걸이는 모조품이었던 것이다.
아, 다 가짜였어! 모두가 다 사기였다고! 하는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가. 다른 은행보다 한 푼이라도 더 높은 이자를 준다고 해서 맡겼더니…! 뉴스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절규가 귓전을 때린다. 누군들 가짜 목걸이와 가짜 행운에 속아서 잠깐 눈이 멀지 않겠는가. 맹귀부목, 눈 먼 거북이처럼 일생에서 그런 행운의 목걸이를 한 번 가질 수 있다면, 그건 동화 속의 세상에서나 가능한 판타지인가.
“인생이란 참 이상하고 무상한 거야! 사소한 일이 파멸을 가져오기도 하고 구원을 베풀기도 하니.” 그 여자의 뒤늦은 깨달음처럼 누가 알리? 구원과 파멸이 한 뱃속에서 나온 쌍둥이 형제이고, 한 지갑에서 나온 동전의 양면인 것을!
글/황영경 교수(신흥대문예창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