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 교수의 문화오딧세이'책이 있는 풍경'
혹시, 경주가 고향?
경주여행을 한다? 경주는 어렸을 적 수학여행 이후로 늘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되었다. “고향은 육신이 태어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장소이다.
” 그렇다. 많은 이들이 마음 둘 곳 한군데쯤이 필요할 때 고향을 그리워한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부드럽고 완만한 능원들로 이루어진 경주는 만인의 고향이 되고도 있다.
『경주산책』은 강석경 작가가 방랑자처럼 많은 여행을 한 후에 비로소 모성의 품에 안긴 듯 경주에 안착하여(현재 작가는 통영에 거주) 썼던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는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경주에 매료되었고 영감을 받았다고 했으니 행복한 작가이다.
웬만한 지방도시는 거의가 계발 열풍에 휩싸여 현대인들에게는 이제 고향이 고향 같지도 않다. 그래서 경주는 우리에게 더욱 위로가 되는 고장이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둘러본 뒤 경주의 특산물이 되다시피 한 황남빵을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도 경주여행에서 맛보는 소소한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강석경은 “페허의 황룡사지와 계림숲을 거닐며 자신의 원형을 발견하고, 달팽이집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근원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맞도록” 권하고 있다. 그는 민족의 고향으로서 경주라는 존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렇거니, 독자 여러분들은 너무 진지한 경주답사라고 속단하지 마시길!
작가는 오늘날 어디에서도 헌헌장부를 볼 수 없다고, 궁궐 안의 연못이었던 월지(안압지)의 수면 위에 어리는 신라 화랑들의 환영을 보면서 쓸쓸해 한다.
‘헌헌장부는 다 어디로 갔나?’ 티브이 사극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밖에.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하고도 명계로 돌아간 뒤에는 영웅도 한 무더기 흙더미가 되니 공연히 인력을 수고롭게 하지 말고 불로 태워 장사지내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문무왕. 그 대목을 읽다가 요즘 고(故) 모 인사의 ‘국립묘지 안장’ 논란을 떠올리게 된다. 아, 어떤 인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계속 문제를 낳는다.
‘죽음체험’에 대한 뉴스를 보았다. 유서를 쓴 후에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들어가 삼십 분 동안 ‘죽어’ 있다가 나오는 가상체험 프로그램인데, 촬영장이 진짜 장례식장 같다. 잠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살아생전에 ‘잘 할 것’을 맹세한다. 삶에도 죽음에도 연습이 있다면, 누가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생을 살까?
강석경 작가도 경주 봉황대 능 앞을 지나가다가 저 안에 누우면 얼마나 고요할까, 하고 무덤 속을 상상한다. 높으신 왕들만 계시는 그 속은 더없이 고절한 지복천년의 세상인가? 『경주산책』과 짝을 이루는 또 하나의 경주 에세이,『능으로 가는 길』에서 작가는 고요히 사색하고 성찰한다.
“현실과 시간 앞에 의연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경주의 고분들이다.” “묻힌 자의 욕망과 회한도 육신과 함께 스러지고 부장품들만 불멸의 꿈처럼 세월의 지층에 박혀 있는데, 고분 곁을 지나다니며 기다림을 배울 수 있었다.” 전설과 신화가 한데 어우러진 역사의 도시에서 필시 우리의 삶이 어디까지가 꿈이고 생시인지, 몽환 속을 한 번 헤매는 것도 올여름 특이한 답사여행이 되겠다.
경주 박물관에서 작가는 고분에서 발굴된 고대광실의 부장품들을 만난다. 내가 만약에 부장품을 넣는다면 무엇을 가져갈까? 차(茶)를 좋아해서 방에 비싸지 않은 찻잔이나 도자기 그릇을 놓아두고 바라보는 취미가 있는 작가는 “내가 그릇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어 있기 때문”이라며 노트북 하나만 취하고 나머지는 그릇처럼 비우기를 원한다.
경주에 가면 ‘황남빵’ 같은 소박한 즐거움도 있겠지만 역시 이처럼 담백하고도 칼칼한 작가의 육성을 듣는 것도 ‘경주여행’의 진수다. “집에 가득 찬 물질에서는 부패의 냄새가 나고 가슴에 가득 찬 욕망에서는 폐수의 냄새가 난다.”는 그의 통렬한 서슬에서 더위가 한결 가신다.
선덕여왕의 꿈이 서린 황룡사지 터에서도 재벌회사의 고층 아파트를 마주보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작가는 내가 사랑하는 신라는 환상 속의 시공간이라고 짐짓 ‘변명’을 한다. 신라가 없는 경주, 그 능으로 가는 길에서 작가는 쑥부쟁이 같은 추억도 만나고 망초꽃 같은 슬픔도 보았다.
거기, 신라는 없을지라도 어머니 젖무덤 같은 원형의 고향은 아직 남아 있다. 김유신이 없어도, 원효가 없어도 우리는 그래서 경주에 간다.
황영경 교수의 문화...
황영경 교수/신흥대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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