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림이 만난 사람
‘경기연극 올림피아드의 월계관’ 희곡상 거머쥔 윤희웅 극작가
지난 4일 안성 용설아트페이스에서 닷새간 열띤 경연의 막을 내린 제21회 경기연극 올림피아드에서 희곡상을 거머쥔 윤희웅 극작가(43세, 사진 왼편)는 미상불 월계관을 쓴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상을 받은 <마지막 선물>의 부제는 ‘행복한 여자’입니다.
제 어머니께선 치매로 고생을 많이 하셨죠. 하지만 돌아가실 때만큼은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좋은 추억만을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마지막에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얀 백지가 되어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래서 행복한 여자라는 겁니다. 오늘따라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지네요. 어머니께서 자식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참 좋아했을 텐데…” 경기연극 올림피아드는 경기도내 순수 아마추어 단막극 축제다.
연극은 관객을 향해 점차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현 시점에서 치매라는 병을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인가, 아님 사회의 문제로 봐야 하는가를 관객에게 묻는다. 정성을 다해 키운 부자인 큰아들은 병든 어머니를 버리고 몰래 이민을 떠나고, 가난한 작은 아들이 병든 어머니를 모시면서 생겨나는 갈등을 실감나게 이야기한다.
바로 그 갈등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아본다는 줄거리다. “제가 실제 경험한 가족사의 한 단면이다 보니, 극중 며느리처럼 제 아내가 고생 좀 했습니다. 전 아내에게 참 못된 신랑이죠. 나의 못 이룬 꿈을 위해 자신에게도 있었을 꿈을 접고 남편과 자식들만 바라보고 산 해바라기 아내랄까요?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늦깎이 작가 윤씨는 곁에 있는 동지적 아내 김금순 씨의 손을 꼭 잡아준다. 그녀와는 17살 때인 고1때 인천시내 학생 연극 동아리에서 만났단다. 정진 배우가 대표로 있던 경동극장에서 연극포스터도 붙이는 등 함께 활동하다가 정이 들어 21세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조혼인 셈이다. 그리하여 일찌감치 요셉과 정 남매를 두었는데, 어느덧 동생 같은 아들은 대학에서 연기공부를 하다가 입대하여 현재 당당한 대한민국 군인으로 복무 중이다.
“세월 빠르네요. 제가 제대하는 날 백일잔치를 한 아들인데 벌써… 결혼 초에는 제대로 된 직장조차 못 구해 포장마차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배우지망생으로서 서울극단 제3무대에도 잠시 몸을 담았지만, 결국 연극이고 뭐고 다 때려치웠습니다. 우선은 먹고살아야 했으니까요. 고생깨나 하다가 지금의 직장에 들어갑니다.”
그는 안산 소재의 농심라면 계열사인 율촌화학에서 20년 넘게 근속해왔는데, 한때는 열혈 노조위원장과 평준화 학부모 대표로도 활동했다. 동시에 학구열을 불태우며 방송통신대 국문과와 서울예술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소설 창작과정을 수료했는가하면, 작년엔 한국희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본격적인 극작법도 공부했다.
그는 이미 근로자문화예술제에서 희곡상을 탄 경험에다가 시흥시 문학상 수필 대상까지 수상한 적이 있는 골수 글쟁이다. 아울러 배우에의 꿈도 못내 버릴 수 없었는지 기회만 닿으면 무대에서 연기솜씨를 한껏 뽐내기도 했다. <채플린 지팡이를 잃어버리다><우동 한 그릇>등의 연극이 그것이다.
윤작가의 ‘거침없는 하이 킥’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의 열정과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에 혀가 절로 내둘러진다.
“신춘문예에 희곡을 모집하는 신문사가 이제는 몇 안 남은 줄 압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희곡작가는 보이지 않고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만 나온다는 말들을 합니다. 그 어려운 등용문을 통해 데뷔한 신춘문예 희곡당선 작가들도 계속 희곡을 쓰지 않는답니다. 왜일까요? 바로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무대가 적기 때문이겠죠. 이 열악한 연극 환경이 정책적으로 개선되고 나 같은 병아리 작가도 꿈을 키울 수 있는 무대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새내기 희곡작가로서 연극계를 향한 바람과 함께 따뜻한 ‘가족애’의 속내를 살짝 드러내며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이번 작품이 치매에 걸린 당사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지켜준 며느리, 세 명의 여인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
(최송림 I 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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