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과 우동 한 그릇
“짜장면은 짜장면이다.” 아니 누가 대한민국 서민들의 대표음식 짜장면을 짜장면이 아니라고 했었나?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랬었다. 짜장면은 표준어가 아니니까 자장면으로 써야한다고.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국립국어원에서 짜장면도 표준어로 쓰도록 인정해줬다. 이건 어쩌면 시인 안도현이 굳건하게 밀어붙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어떤 글을 쓰더라도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표기하지 않겠다는 투철한 신념이 있었다.
안도현의『짜장면』은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 짜장면 배달부가 되는 이야기다. 아니, 어떻게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 짜장면 배달을 한단 말인가?(우리는 본래 배달의 민족이니까!) 그런데 잠깐, 대한민국의 웃어른들치고 자신의 집안을 뼈대 없는 가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던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앞머리카락 몇 가닥을 파랗게 물들인 고등학생 소년은 중국집 만리장성의 주방보조 겸 오토바이 배달부가 된다. 늘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은 무엇,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훈계를 받고 자란 소년이 가출을 해버렸으니 엄청난 반란의 사건이다. 우리시대 청소년들이 한 번쯤 열망하는 오토바이 폭주족. 아시다시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인 시선은 여지없이 불편하다. 하지만 여기, 한 모범인생 아버지의 모범생 외아들조차 그 대열에 합류하는 사연은 아주 간단하고도 전폭적이다.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하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는 주인공인 ‘내’가 오토바이를 몰래 끌고나가 사고를 내자 엄마(아내)에게 손찌검을 한다. “애가 죽었으면 어떻게 되었겠어!” 하지만 애는 멀쩡히 살았고 애지중지하던 오토바이만 재생이 안 되게 망가져버리자 화풀이를 아내에게 한 것이다. “오토바이는 어떻게 할 거야!” 방문을 걸어 잠그고 어머니를 마구 때리는 폭력 아버지에게 반발심이 생기지 않다면,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어찌 한창 혈기방장한 청년이라고 하겠는가. “열입곱 살, 나도 이 세상에 대해 책임을 좀 지고” 싶었지만,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열일곱 살 따위에게는 절대로 무엇을 책임지게 하지 않는 관대한 사람들이다.
‘화끈하게 가출 한번 못한 것’과 ‘어른들의 눈을 피해 오토바이 꽁무니에 여자아이를 태우고 멋지게 달려보지 못한 것’이 자신의 청소년기를 돌아볼 때 후회되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작가의 말처럼 『짜장면』은 못 가본 길에 대한 환상을 구현하는 팩션이다. 청춘의 관문 입구에서 앓아눕는 성장통이 허기를 손쉽게 달랠 수 있는 음식인 짜장면과 융화하면서 비로소 치유된다. 주인공은 손끝에 남은 양파 냄새를 맡으며 성숙한 자아를 확인하다. 양파가 짜장면 속에 들어가면 “자기가 양파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짜장면 냄새가 되는” 것처럼.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도 『짜장면』못지않게 독자들의 구미를 돋우는 미담이다. 섣달 그믐날 밤, 분식집 북해정에 마지막 손님으로 나타난 가난한 가족에게 베푸는 주인의 온정이 훈훈하다. 달랑 우동 한 그릇을 시켜서 어린 두 아들과 어머니가 나눠먹는 장면이 서글프기보다는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많은 빚까지 남긴 남편을 대신해서 어머니는 강하게 살았고, 그런 어머니 밑에서 두 아들은 성공하는 삶을 산다. 흔히 듣는 인생역경 극복의 스토리지만 거기에는 우동 한 그릇의 힘이 공헌하는 바가 매우 크다.
퇴근준비를 하는 식당에 들어와 셋이서 한 그릇만 시켜먹고 나가는 손님에게 우동집 주인은 친절하게도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 덕담을 외쳐주었다. “그 목소리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 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이처럼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한 해의 마지막 밤, 그때 셋이서 나눠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절묘한 섭리가 아주 짧은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 우리 어렸을 적에도 부잣집 아이든 간난한 집 아이든 간절하게 먹고 싶은 것 목록에서 짜장면은 늘 영순위를 차지하던 꿈의 음식이지 않았던가? 지금도 우리에게 짜장면과 우동은 아주 소박하고 친근한 음식이다. 무척이나 값도 착하면서 한 그릇도 마다지 않고 배달해 준다. 아, 그런데 왜 이 얘기가 나왔지? 그렇지,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에서 전 국민이 이제 맘 놓고 써도 된다고 인정한 짜장면! 국가도 관대해지고 있는가보다.
황영경 교수/신흥대학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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