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의 요일제!
개천절의 요일제! 그 누구의 발상이며, 그 누구를 위함인가!
노벨 평화상의 나라, 개인의 인권과 사회적 복지의 대명사로 지구촌의 상징인 노르웨이는 총리도 경호원 없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열린 나라이다. 그러나 최근 총리 집무실과 정부청사 건물의 유리창이 모두 깨어지는 폭탄테러가 발발했다.
곧이어 수도 오슬로의 우퇴야 섬 학생들 캠프장에서 한 명이 76명을 쏘아 죽이는 희대의 참극이 발생하였다. 옌스 총리는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직후 담화문에서 “더 이상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더 강한 민주주의와 더 큰 관용의 정신으로 보복하겠다”고 밝혔다.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은 옌스 총리와 노르웨이 국민들의 “아름다운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하면서 응원을 잊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옌스 총리는 “우리의 슬픔에 공감해 주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여러분의 지지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면서 오슬로 대성당에서 가진 연설을 볼 수 있도록 연결했다.
오슬로에서 최소 10만 명이 모인 가운데 노르웨이 테러와 폭력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호콘 왕세자는 백장미와 빨간 장미를 든 군중에게 “오늘 밤 거리는 사랑으로 넘쳐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 가장 후련한 복수는 용서이다. 그러나 일부 지식인들은 노르웨이를 비롯하여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고립과 그로 인한 극단적 사고를 완화할 방법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차별 범죄나 테러는 줄어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결론을 내린다. 이제 우리는 물리적인 제도를 넘어서 인성(人性)의 개성적, 사회적 형성과정과 진정한 복지와 시혜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한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테러범 안데르스 브레이빅(32)은 1m90의 거구이나 어린 시절 아주 평범한 소년으로 양처럼 온순하게 자랐다. 그런 브레이빅이 자신의 말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희대의 괴물’이 된 것은 그에게는 불행하고 기구했던 가족사의 배경이 있다.
전처(前妻)와 세 자녀를 둔 아버지(런던과 파리 주재 노르웨이대사관의 상무관)와 첫 결혼에서 딸 하나를 둔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재혼해서 낳은 아이가 브레이빅이었다. 부모는 그가 한 살 때 헤어졌다. 런던에 남은 아버지와 이혼을 한 어머니와 브레이빅은 노르웨이로 돌아가 이후 2009년까지 30년간 함께 살아왔다. 어머니는 한때 노르웨이 육군 소장과 다시 결혼했다가 이내 헤어졌다.
아버지도 런던에서 대사관 동료 직원과 결혼했다. 그들은 어머니를 상대로 브레이빅의 양육권 다툼을 벌였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브레이빅은 가끔 런던과 파리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들도 브레이빅이 열두 살 때 갈라섰고 아버지와 완전히 결별한 것은 15세 때였다.
공공장소 벽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다니다가 경찰에 입건된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고 만나주지 않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 5년 전, 브레이빅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달라고 간청했지만, 아버지는 매정하게 거절해버렸다. 브레이빅은 집단 살인극을 저지른 이유로 집권 노동당, 친(親)이슬람 이민 정책, 남녀평등주의를 요구하는 페미니즘 등에 대한 반감과 기독교 전쟁을 언급했고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한다. 소위 사이코 패치인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리 되었을까?
아버지는 집권 노동당 지지자였고, 아버지를 빼앗아간 새 부인은 이민자 신청 업무를 다루는 정부 기관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여성 인권 운운하며 아버지를 떠나버린 페미니스트였고, 누나는 성생활이 문란한 여성이었다. 육군 소장이었던 새 아버지 역시 퇴역 후 태국에서 난잡한 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이번 참사는 21세기 십자군 전쟁을 감행한 기독교 원리주의자가 아니라, 온갖 부조화의 ‘괴물 사회’의 ‘괴물 시민’이 저지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도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고 다문화 가정이 이미 120만 명이 넘었다. 이래저래 그는 우리에 대하여 착각을 했지만 아주 중요한 점을 지적하였다.
홍익인간을 길러내는 홍익가정, 홍익나라의 출현이 시급한 점이다. 그래야만 모든 인류의 진정한 평화를 창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자에게 적선하는 듯한 단순한 부의 배급은 장차 적대적인 양극화를 불러올 뿐이다.
이와 같은 현재의 복지개념은 개개인의 가정환경에 인성과 발달 과정에 따른 뇌 안의 정보의 질과 양은 도외시하고 있다. 결국, 제도적 시행에 따른 단기적인 효과만을 맹신한 서구적 가치관에 의한 것이다. 모두의 인간성속에 깃든 천성(天性)이라는 정체성을 무시함으로써 끝내는 제로섬 게임이 되고, 주체적인 성장의 동력마저 빼앗아 가므로 결국 지배와 굴종의 사회가 되고 악순환은 계속 된다.
이제 ‘만인은 만인의 늑대’라는 마키아 벨리식의 서구식 인간관은 ‘만인은 만인의 행복’이라는 국조 단군의 홍익의 인간관으로 송두리째 대체되어야한다. 맑고 투명하여 사랑과 신뢰가 강처럼 흐르는 홍익 가정, 홍익 사회, 홍익 세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한민족이 앞서서 열어가야 할 지구촌의 새로운 정신문명이다.
지금으로부터 4344년 전 10월 3일 국조 단군 왕검께서 조선(朝鮮)을 개국, 단군 8조교(檀君 八條敎)를 발표하시니 지금도 우리가 늘 쓰는 속담의 원형이다. 이러한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 철학의 보급이 세계적으로 시급하고도 절박한 이때, 대한민국 정부는 개천절을 요일제로 하겠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도, 상징성이 있는 날은 제외한다니 석가모니 탄신일, 예수탄생일은 붙박이로 기념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왜 하필이면 국조 단군의 건국일, 우리나라의 탄생일을 요일제로 한단 말인가? 공휴일을 빙자로 한 조삼모사의 국민 우롱이며 얼빠진 외세 의지의 지속적인 천명이다.
“이로움을 보면 먼저 대의를 생각하라”는 안중근의 외침이 우레처럼 귓가를 울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 년에 며칠을 더 노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밝은 우리 홍익의 역사로 흐르는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군국주의, 신나치주의, 경제적 제국주의의 폭력성 앞에 무시로 방치되어 있는 인류의 신과 같은 고귀함과 거룩함을 회복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천절의 요일제!
글/원암 정영주,
(사)국학원장대리,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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