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의정부 초연 <늦둥이> 책으로
의정부 시민회관에서 극단 한네(대표 최병화)가 1998년 초연한 연극 <늦둥이>가 포켓용 단행본 책(평민사)으로 나왔다. 한국극작가협회(이사장 선욱현)가 11월 11일부터 3일간 대구 달서아트센터 와룡홀에서 펼친 우리네 극작가들의 잔치인 제5회 대한민국 극작 엑스포 축제행사에 발맞춰 한국희곡 명작선을 출판한 것이다.
내 기억엔 이 극작엑스포가 지방에서 열린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나는 <에케호모>와 <도라산 아리랑>, <간사지>에 이어 이번에도 명작시리즈에 108번 명패를 달고 네 번째 참여한 셈이다.
<늦둥이>는 초연 후에도 한국연극배우협회(포스터 사진)를 포함하여 광명, 분당, 밀양 등 서울과 지방 여러 극단에서 무대에 꾸준히 올렸다. 요컨대 참여 배우들은 말할 것 없고 경향 각지의 공연 연출자만 해도 첫 팡파르의 김도후를 비롯해 남궁연, 김덕기, 오차진, 김은민, 박중신 등등 손꼽을 정도로 여럿 된다. 지방은 연극제 출품작이 대부분인데, 분당 엄마 따라잡기 박은정 대표는 여성전용극단 ‘하이힐’ 창단공연으로 늦둥이를 선택한 경우도 드물게 있다. 학창시절이나 젊은 날 꿈꾸던 무대를 손에 쥔 듯 신바람난 주부들의 공연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가하면 서울시민연극제 참가작으로서 순수 아마추어 극단의 공연도 눈에 띈다. 극단 연극배우 대표 박중신 연출 이야기인데, 그는 한때 건대역 쪽에서 소극장을 운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래 못 버티고 접은 후에 우리 동네로 이사, 새절역에서 백련사 가는 길목에 조그마한 치킨집을 열었었다. 그래서 나는 심심찮게 그의 가게를 찾았는데, 재미있는 건 입장료(?) 만원만 내면 치킨이든 뭐든 안주는 얼마든지 줄 테니까 내가 즐겨 마시는 막걸리를 이웃 마트에서 사와 자급자족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장사가 되느냐고 내가 구겨진 자존심을 걸고 항의하면, 자기 말 안 들으면 출입금지라는 단호한 태도였다.
나는 가게에서 연극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잔 술에 인생을 안주삼아 나를 뒤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곤 했다. 작가로서 삶의 방법론을 한번쯤 돌이켜 더듬어 보는 인생수업의 교실로 삼은 거랄까, 누가 인생을 연극이라 했던가? 연극만으론 생활이 어려우니까 연극 일이 없을 땐 용감하게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하루하루를 찰지게 꾸리는 삶과 세상 그 자체가 바로 공연무대요 연극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정작 극단 이름도 ‘연극배우’라 정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연극을 지키려는 그의 건강한 예술정신과 삶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허긴 대학로 연극인 중엔 마트나 음식점 등의 알바나 밤에 대리운전도 마다하지 않은 젊은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대표의 말을 빌리면 “아무리 생활 현실이 어려워도 무대를 사랑하는 연극인으로서의 자부심만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그들이다. 아무쪼록 늦둥이로 맺은 여러 값진 인연들과의 이야기가 내겐 훈훈한 정으로 느껴질 따름이다.
<늦둥이>는 IMF시대가 배경으로서,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일수록 가족끼리 똘똘 뭉쳐 슬기롭게 잘 극복해내면 그 또한 늦둥이를 낳듯 소중한 보물이라는 메시지의 가족극이다. 처음엔 등장인물이 여자들만 나오는 여성전용 연극이랄까, 희곡 자체는 뭐 그랬는데 나중엔 차츰 극단 사정과 연출 판단에 따라 두세 명 남자 단역이 맛보기 양념으로 끼여 출연하게 된다.
지금은 여기저기 거듭된 공연을 통해 그렇게 희곡을 차츰 보완, 손질한 상태로 희곡이 다듬어졌다. 이제부터 작가로선 희곡 주문이 들어오면 여자만 등장하는 희곡과 남자가 섞인 두 희곡을 놓고 형편에 따라 보내줘야 될 듯싶다. 그야 어쨌든 이번 책 출판을 기회삼아 연말쯤 송년회 겸해서 <늦둥이> 공연 극단대표, 연출, 출연배우, 스태프들까지 연락해 출판기념회를 열든지 아니면 책이라도 한권씩 돌려야겠다. 글/ 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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