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디자이너 방영숭의 음식 견문록 '빙수'
패션디자이너 방영숭의 음식 견문록
여름철 최고의 간식 ‘빙수 이야기’
여름철에 먹는 최고의 간식은 분명 아이스크림과 함께 빙수일 것이다. 예전에는 얼음을 깎는 도구가 대패였으나, 이후 손으로 돌리는 수동 회전식을 거쳐 현재는 전동식이 나왔고 이제는 더 편리한 도구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했다. 예전 초등학교 하교 때 학교 앞에서 대패로 얼음을 갈아 별모양 같은 틀에 얼음 가루를 꾹꾹 눌러 넣고 빨강, 파란, 노란색의 색소를 부어주던 그 아저씨와 그 시절, 그리고 그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냥 가슴이 설렌다.
그렇다면 빙수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먹기 시작했을까? 기록에 의하면 빙수의 유래는 기원전 3000년경 중국에서 눈이나 얼음에 꿀과 과일즙을 섞어 먹은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이탈리아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귀족들이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기원전 300년경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점령할 때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는데, 병사들이 더위와 피로에 지쳐 쓰러지자 높은 산에 쌓인 눈에 꿀과 과일즙 등을 넣어 먹었다고 한다. 또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카이사르는 알프스에서 가져온 얼음과 눈으로 술과 우유를 차게 해서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는 규슈(九州) 지방에서 1950년경 가고시마(鹿児島)의 찻집에서 재래의 얼음 팥에 연유를 붓고 과일을 넣은 시로쿠마(白熊, 흰 곰)가 개발되었는데, 그 이름은 둥근 그릇에 담은 빙수 위에 하얀 연유를 붓고, 단팥, 체리와 귤 등의 과일을 얹은 모양을 위에서 보면 마치 흰 곰의 얼굴처럼 보이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오는데, 지금도 그 명칭이 통용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에 서빙고의 얼음을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어 이것을 잘게 부수어 화채 등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얼음에 대한 기록은 지금의 서울인 한양이 수도로 정해진 조선초기부터 기록이 남아있는데, 특히 태종실록을 보면 조선 초기 이전부터 한강에 빙고가 있었으며, 동빙고 서빙고라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듯이 한강은 궁궐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얼음을 공급하는 주요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것은 우리나라의 얼음 사용이 그 지리적 조건 탓에 일반 백성들도 자연스럽게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상부지배계층에 한정되어 있었던 얼음이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려왕조 때에부터 귀족들에게만 지급된 것이 아니고 13세기부터 일반인에게 얼음의 저장을 허가하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얼음이 외국과 달이 귀족들과 함께 일반서민에게 가깝게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우리민족의 나눔의 정서라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빙수는 얼음을 잘게 부수어 갈고 당밀 또는 설탕과 그 밖의 감미료를 섞은 얼음 간식이다. 주재료인 얼음은 과거에는 천연 얼음이 쓰였지만 나중에는 인조 얼음이 생산되고 양질의 감미료가 개발되면서, 삶은 팥을 넣은 팥빙수나 각종 과일을 섞은 다양한 과일 빙수로 개량되어 여름철 청량 음식으로서 많은 사람이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정도가 아니라 치즈를 곁들인 빙수. 와인 맛이 나는 빙수, 홍차 빙수, 녹차 빙수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빙수들이 등장했다.
지금 전 세계는 이른바 ‘한류’라는 문화적 폭풍을 즐기고 있다. 물론 한식이라는 우리의 음식도 즐기고 있는데 얼마 전 관광공사의 자료를 보면 외국인이 즐기는 한식의 베스트5 중 빙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빙수 맛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즐기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이것 역시 분명 필자 개인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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