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삶의 은인이자 스승 된, 보건소에서 만난 할머니
이현숙 교수의 멋있는 사람의 맛있는 이야기 이태리 단상(3)
이태리 삶의 은인이자 스승 된, 보건소에서 만난 할머니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려니 예방접종주사 맞은 내역서(Vaccinazione)와 출생 신고서 등 여러 서류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1년간 준비한 이태리어 실력으로 사전을 들고 보건소(USSL)를 찾아 갔다. 물론 한국에서 띈 각종 서류를 영문 번역한 것을 확인 후, 그곳의 양식대로 작성했고, 보건소에 서류를 제출했다.
이태리에 사는 한국 사람들 얘기로는 항상 관공서나 외출 할 때는 최대한 옷을 잘 입고 금붙이도 부착을 하고 다니면 덜 무시한다고 해서 그렇게 다니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외모 지상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태리 사람들은 돈이 있고 없고를 참 잘 따지는 편인 것 같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한국 사람과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참 배타적인데 막상 ‘우리’ 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오면 정말 가족처럼 정도 많고 잘해주는 편이다. 동양인은 이방인이니 뿌리도 없고 무시해도 되는 입장에 늘 서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인 우리가 그들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비치는 여기 한국에 사는 동남아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인식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방글라데시 정도의 사람들인 줄 안다.
한국인에 대한 자료도 많이 없고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관심이 없다. 1990년대이니 인터넷도 발달이 되지 않았고 김연아와 싸이(?)도 없었다. 월드컵에서 축구를 이태리에게 이기기 전의 시대에 난 이태리에 있었다. 한번은 경찰에게 서울은 도쿄보다 크고 사람도 훨씬 많이 산다고 말했다가 날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몰아 부친 적이 있다. 옷을 잘 입었을 때는 일본인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은 동양의 서양 사회라고 말들을 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적대 감정을 갖기 보다는 그들의 성실성과 근면성 그리고 ‘예’라고 말을 했을 때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고 책임질 수 있는 신뢰성을 배워야 한다.
각 개인이 스스로 흔들림 없는 주체성,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외국에 나갔을 때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될 것 같다. 나라를 부유하고 강하게 하는 건 꼭 경제성보다 문화와 국민성 일 수 있다. 문화는 의식주가 해결된 상태에서 찾게 된다.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경제개발로 치솟는 속도만큼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수양하고 덕목을 세우고 배려하는 입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나는
교육이란 이런 것들의 순서를 바로 잡아주고 알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부터 이런 것들이 결핍되어 돈에만 급급한 부모 밑에서 많은 걸 잃고 살아간 우리들 세대가 또 그걸 교육하고 있다. 그러니 평화롭고 나누어야 할 가정이 분열되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그것이 이 순서가 뒤바뀌어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문명의 이기가 자연과 오존층을 파괴하고 결국 우리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 스스로 받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만 피부로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뭐가 잘 못 되어 있는지 인식조차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우리는 예의 나라이고 우리문화는 참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서양문물을 받아 들인지도 언 100여 년. 원래 문화는 문명개방 이후 100년부터 고유의 자신의 것을 찾는다고 한다. 중요성을 인식하는데 한 세기가 걸리는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 벌어졌다. Vaccinazione(예방접종주사 맞은 내역서) 서류를 띄러 갔다가 그곳에서 그날 정년퇴임 마지막 날인 할머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만남이 인연이 되어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할머니는 성당에 다니시는 분으로 신앙심이 좋은 분이셨다. “오늘 내가 USSL을 그만 두는 날인데 내가 당신을 만났으니 뭐 도울 일이 없겠어요?”라고 물어 보셨다. 그리고 친구가 되어주길 원하셨다. 그 후 그의 딸이 거의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아이들 이태리어를 가르쳐 주고 놀아 주었다. 내가 이태리어가 쉽게 빨리 잘하게 되었던 이유는 이런 분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한번은 “하나님 저 이태리어로 된 이태리어 사전을 갖고 싶어요. 그런데 살림하랴 집세 내랴 돈이 넉넉하지 않아요…” 이렇게 기도하자 할머님이 그 다음날 3권으로 된 무거운 이태리어로 된 이태리어 사전을 가져다 주셨다. 마치 기도했던 속마음을 다 듣고 오신 분처럼. 나는 이렇게 하나님의 기적을 매일 체험하고 살았다. 글/ 이현숙 교수
이태리 삶의 은인이자 스승 된, 보건소에서 만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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