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룡은 실존 인물이었다
가을에 떠나는 역사 여행2
이몽룡은 실존 인물이었다
춘향전은 우리 민초들의 영원한 러브스토리다. 1932년 처음 영화로 만들어져 2000년초 임권택 감독이 만든 춘향전까지 16번째 제작되었고,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연극, 오페라 등이 수없이 무대에 올랐다. 이렇게 춘향전이 끊임없이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무었을까? 많은 원인이 있지만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과 힘없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덕수령을 벌하는 암행어사 출두 장면이 한몫을 했다. 그런데 춘향전속에 나오는 암행어사 출두요가 단지 소설 속에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기록이 있다.
영-정조시대 사람인 ‘성섭’의 문집이다. 이 책은 원본이 아니고, 옛 책을 복사한 복사본인데 바로 이 책에 춘향전의 하리라이트인 어사출두 부문이 춘향전과 똑같이 묘사돼 있다. 저자는 ‘우리 고조(高祖)의 일’이라고 적고 있다. 이 기록이 맞는다면 춘향전의 이몽룡은 성섭의 고조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섭의 책에 등장하는 ‘성이성’이 이몽룡의 실제 모델인가? 경북 봉화에는 성이성의 종택이 남아 있다. 이곳은 성이성이 벼슬을 그만두고 죽을 때 까지 거쳐하던 집터에 후손이 더 크게 지은 집이 있다. 현재 이집을 지키며 사는 성이성의 11대 후손 성원기씨는 청백리는 조선시대 청렴한 관리에게 국가가 내린 녹으로 조선시대를 통 털어 215명에 불과하다며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종택 뒤에 있는 사당에서 성이성의 유품으로 어사화(사진)를 보여주었다. 성이성도 이몽용과 같이 과거에 급제 했다는 것이다. 혹 단서가 될 만한 무엇이 없을까 하던 차에 영주에 있는 성이성의 묘소를 찾았다. 그곳 비석에는 성이성이 암행어사로 남원으로가 귀신이 많이 나오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단서는 남원에서 나타났다. 남원지역에는 부사를 지낸 사람들의 사적비를 모아 두는 곳에 성안의(成安義) 비석이 있었다. 성안의는 성이성의 아버지다. 성안의가 남원에서 부사를 지낸 것은 선조40년(1606년)부터 광해 3년(1610년)까지 5년 동안이었다. 그러니까 성이성도 아버지를 따라 13세부터 17세까지 남원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다.
춘향전 속에서도 이몽룡이 17세 되던 해에 승진한 아버지를 따라 남원을 떠난다. 소설속의 인물과 역사 속의 인물의 공통점은 우연히 만들어 졌을까? 이번호 역사탐방은 이몽룡이 실존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추론해 본다. 편집부 정리(역사스페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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