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기 추모극’ 팸플릿의 황당함
최송림 칼럼
‘강태기 추모극’ 팸플릿의 황당함
지난 6월 16일 ‘故강태기 추모특별공연’이 열리는 대구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 갔다. 고인의 유작품이 된 연극 <이뭣꼬!>(정광진 작/연출)를 강태기추모위원회(위원장 이정현)가 주최하고 J&C코리아뮤지컬컴퍼니(대표 정광진)가 주관하는 행사였다.
추모극의 성격에 대해 조금은 의아해하는 시선과 상관없이 고인의 친구 입장인 필자로선 강배우를 기억해주는 애틋한 후배연극인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래서 일찌감치 청탁 받은 대로 팸플릿에 실릴 글 말미에 ‘추모시’까지 곁들여 보냈었다. 내가 친구에게 바친 추모시 <강태기 연극열사를 보내며>는 3월 15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정문 앞에서 열린 연극인장 노제에서 김용선 여배우가 낭독했고, 그 전문이 한국연극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한국연극’지 4월호에 실린 바 있다. 연합뉴스 등 매스컴 포털사이트에도 뜬다. 그런데 어찌된 판인지 이번 행사의 팸플릿에 최주봉 배우 이름의 추모시로 둔갑되어 한 페이지를 장식해 실로 황당했다. 유명배우의 이름을 갖다 붙이면 무슨 이득이 생기는지 모르겠으되, 유명세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상술로 오해받지나 않을까, 그야 어쨌든 이건 엄연히… 내가 보낸 원고 말미의 조시를 따로 떼 제목을 뽑아 편집해 붙인 걸로 봐서 단순 실수도 아님이 분명하다.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말씀이다.
나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오랜 벗을 잃은 상실감과 우정 담긴 내 영혼이 송두리째 도둑질당하고 뒤통수를 맞은 듯 한동안 어이상실 ‘멘붕상태’였다. ‘눈 뜨고 코 베가는 세상’이라는 옛말이 떠올랐다. 이것도 저작권침해가 되는지 어떤지 참 치사하게도 작가협회나 연극협회, 문인협회 등 필자의 소속단체에 의뢰하거나 법률전문가의 도움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행여 ‘내실’보다 ‘포장’에 살짝 더 신경 쓴 결과라면 ‘연극정신’이라는 기본문제와 마주서는 씁쓸함에 서글픔마저 든다. 그러고 보니 팸플릿을 내가 달라니까 연극이 끝난 나중에야 준 것까지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 행사의 진정성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힘들여 그 좋은 행사를 치루면서 왜 이런 상식 밖의 장난(?)으로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훼손시키며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고 오물을 뒤집어쓰는가! 어렵고 열악한 연극의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걸어야 할 믿었던 동지적 연극인들이라 참으로 안타깝다.
내가 며칠 후 문제제기를 할 때까지 그들로부터 한마디의 해명이나 사과조차 없었던 걸 보면 도덕불감증에 걸려도 단단히 걸린 듯싶다. 비록 이번 경우뿐만 아니라 요즘 연극판에서 흔히들 ‘연극정신’의 실종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우리 다 같이 옷깃을 여미고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이래저래 궁금해진 독자들이 있을까봐 강태기 배우를 오래토록 기억해주길 바라며 문제의 추모시 전문을 다시 한 번 덧붙인다.
어제 만나 활짝 웃던/ 우리들의 배우 강태기 연극쟁이
오늘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밤새 안녕이라더니/ 용트림하듯 하늘로 치솟았나
겨울의 끝자락에 휘말려/ 봄맞이 꽃길여행 떠났나
대학로 생맥주집 원탁의 기사에서도 연극이요
동숭동 뒷골목 대폿집에서도 연극타령
연극 연극 연극밖에 모르던/ 바보 같은 외길인생
누구는 일세기에 하나 나올까말까 하는
연극천재라고/ 또 누구는 연극전사라고
아니 연극열사라고
그래, 잘났다 천재여 전사여 열사여
어찌 노부모와 자식 삼남매 누이동생들
그렇게 사랑하던 가족을 두고
구천 그 먼 길을 혼자서/ 훌쩍 떠날 수 있단 말인가
산 자는 뒤통수를 맞은 듯/ 텅 빈 하늘만 바라보네
죽음도 차라리 명연기여라
출세작 에쿠우스 이후 온갖 매스컴이
저토록 무심하게 폭발적이고
포털사이트 검색순위조차 1위거늘
어서 털고 일어나 대포 한잔하자 친구야!
오호통재라, 임을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둘 이렇게 모여/ 마음속에 가두고 사로잡아보지만
차디찬 현실은 부질없다 도리질일세
강태기 연극열사여/ 이제 못 다한 일 무거운 짐일랑
우리에게 맡기고/ 고통도 눈물도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게나/ 잘 가게, 벗이여!
최송림 I 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강태기 추모극’ 팸플릿의 황당함
강태기와 마지막 사진. 최송림 작가(사진 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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