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위기 속에서 신부의 헌신을 보다
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의 사람들(8화)
<'눈보라 위기 속에서 신부의 헌신을 보다'
비야프랑카(Villafranca del Bierzo)에 위치한 알베르게(순례자용 숙소)에서 발톱 치료를 받고 나자 현우네 가족들과 헤어졌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새로운 동행들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진짜 가족처럼 편안했던 현우네 가족들이 그리웠다. 다음날 현우네 가족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베가 데 발카세(Vega de Valcarce)까지 걷기 위해 비를 뚫고 새벽녘에 출발했다. 순례길 대부분이 산길이라, 그동안 흙을 밟고 다녔다면 비야 프랑카에서 베가 데 발카세까지는 포장도로 구간이다. 산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옆에 순례자들을 위한 콘크리트 길이 깔려있다. 등산화를 신고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걸었더니 발바닥에 통증이 심해졌다. 하지만 현우네 가족들과 재회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걸어 마침내 목적지인 베가 데 발카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예상과 달리 현우네 가족도 없었고 다른 순례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숙박비를 내야 하는데 숙박비를 받는 사람조차 없었다. 50명을 수용 할 수 있는 알베르게였지만 그 날은 단 한명, 나 혼자 이곳을 이용하게 되었다. 혼자 큰 알베르게를 이용한다는 것은 편안한 일이 아니었다. 피곤해서 푹 자고 싶었지만 무서운 감정이 계속 들어서 불을 끄지도 않고 다 켠 채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단 한 명의 순례자라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산 정상에 위치한 오세브레이로(O cebreiro)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총 세개의 마을을 지나치는 오늘 일정을 확인했기에 나는 커피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출발했다. 세 개의 마을을 지나치는 동안 배가 고파왔지만 아침을 먹을 작정이었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비를 맞으며 올라갔다. 이것이 땀인지 비인지 모를 정도로 옷이 젖어 갔고, 점점 허기가 졌고, 마을에 도착하면 식사부터 챙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음식점을 찾았지만 전부 문이 닫혀 있었다. 아쉬워하며 두 번째 마을까지 걸었다. 그런데 두 번째 마을도 세 번째 마을도 열려있는 식당이 없었다. 주말도 아닌데 전부 문을 닫다니 이유도 모르겠고 화가 났다. 다음 마을은 오늘의 목적지인 오세브레이로이니, 배는 고프지만 물을 아끼면서 걸으면 걸을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걷기를 시작했다. 산을 오르다 보니 비는 그치고 멀리서만 보였던 하얀 눈이 내 앞에 펼쳐졌다. 까미노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눈이다. 덕분에 나는 힘든 것도 잊고 어린이처럼 즐거워하며 산을 올랐다. 그런데 산 위로 올라 갈수록 눈의 깊이는 깊어져갔고, 발목 정도였던 눈의 깊이는 어느새 무릎 위까지로 올라와 있었고 간간이 보이던 다른 이들의 발자국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즐거움은 사라진지 오래됐고,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날씨는 급변하면서 칼 같은 매서운 눈보라가 내 볼과 손등을 강타했고,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문제는 이미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도착은커녕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위치도 모르겠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이 눈 속에 파묻혀 도통 속도가 나지 않았다.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고 쌓인 눈 때문에 노란색 화살표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조차 나지를 않았다. 내가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두려웠다. 첫 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만큼 두려웠다. 손과 발이 꽁꽁 얼어서 감각이 무뎌지고, 이 산속에서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부모님이 떠올랐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데 그 순간 눈길에 개인지 늑대인지 모르는 짐승 발자국이 보였다. 선택의 여지도 없어, 그 발자국이 마을에 사는 개의 발자국이기를 바라며, 그 발자국만을 졸졸 따라 걸었다. 이십분 쯤 지났을까? 눈앞에 갈리시아 지방의 시작을 알리는 큰 비석이 나타났다. 세상에 이렇게 반가운 비석이 또 있을까. 비석은 내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니고 제대로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확신을 가지고 걸으니 무릎까지 쌓인 눈밭도 견딜 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담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담은 사람들이 쌓은 것으로 마을이 시작되고 있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돌담을 따라 걷자 자동차도 보이고,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 위치한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한 것이었다. 여자혼자,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눈보라 치는 산길을 넘어 왔는데 네게 펼쳐진 오세브레이로의 마을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스러웠다.
눈보라 위기 속에서 신부의 헌신을 보다
경치 감상도 잠시 설인의 모습으로 알베르게에 들어서자 호스피딸레로(알베르게 자원봉사자)가 놀라며 하는 말이 “어떻게 여기를 올라왔냐”는 것이다. “지난 며칠 동안 눈보라 때문에 이 산은 입산금지가 되었다”고 알려주면서 “며칠 동안 순례자들이 이곳에 오지를 못했고, 주로 택시를 타고 이 구간을 뛰어 넘어 다음코스에서 산티아고 순례를 계속한다”며 내가 며칠 만에 나타난 첫 순례자라며 놀라워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왜 마을들 음식점이 모두 닫혀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진짜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덜컹 쓸려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무사히 산을 오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가 절로 나온다.
아무리 피곤해도 저녁 기도를 위해 성당을 찾았다. 때 마침 미사 시간이었다. 그런데 눈보라 때문인지 미사에 참석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이렇게 큰 성당에서 신부님과 복자(신부의 미사를 돕는 사람)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미사를 보게 되었다. 사람이 많던지 적던지 순서, 순서를 진지하게 진행하는 신부의 모습에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참 새로운 경험이고, 경이로운 예배였다. 나 때문에 미사가 진행된 것이 아닌가해 미안한 마음으로 신부님께 물으니 약속된 미사시간이 되면, 성도가 한 명도 없어도 미사를 진행한다고 답했다. 스페인의 깊은 산, 정상에서 만난 신부님의 삶의 모습에서, 나의 과거를 반성하게 되고, 다가올 미래에 나의 삶의 태도의 방향을 미리 본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눈 속에 파묻힌 이곳을 어떻게 탈출해야하나? 새로운 고민이 시작 됐다. 눈 녹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이때 호스피딸레로가 입을 열었다......(다음호 계속) 글/ 현예나 시민기자
사진설명: 갈라시아 지방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표시석(상), 눈 덮인 산속(중), 아름다운 마을 ‘오세브레이로’의 모습(하)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