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 사람들(9)
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 사람들(9)
쏟아지는 비, 갈리시아 지방을 걷다.
아무리 피곤해도 저녁 기도를 위해 성당을 찾았다. 때 마침 미사 시간이었다. 그런데 눈보라 때문인지 미사에 참석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이렇게 큰 성당에서 신부님과 복자(신부의 미사를 돕는 사람)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미사를 보게 되었다. 사람이 많던지 적던지 순서, 순서를 진지하게 진행하는 신부의 모습에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참 새로운 경험이고, 경이로운 예배였다. 나 때문에 미사가 진행된 것이 아닌가해 미안한 마음으로 신부님께 물으니 약속된 미사시간이 되면, 성도가 한 명도 없어도 미사를 진행한다고 답했다. 스페인의 깊은 산, 정상에서 만난 신부님의 삶의 무게 속에서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며 숙소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눈 속에 파묻힌 이곳을 어떻게 탈출해야하나? 새로운 고민이 시작 됐다. 눈 녹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이때 호스피딸레로가 입을 열었다. 눈 속을 뚫고 정오에 택시 한 대가 올라온다는 것이다. 행운이었다. 택시를 타고 하산했다.
눈보라 치는 산 정상과는 달리 산 밑은 평온 그 자체였다. 까미노 길이 연결되는 곳에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멀리서 사모스(Samos) 수도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멋스러웠다. 하늘은 흐리지만 비도 오지 않고,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허기를 채우러 들어간 바(Bar)에서 순례자로 보이는 아저씨,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현우네 가족과 헤어지고 처음 만나는 순례자들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그들은 호주부부 제니퍼와 개리였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알베르게가 아닌 호텔에서 머무르기 때문에 나와는 전체적인 계획이 달랐지만 오늘 하루라도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사모스에서 사리아(Sarria)로 가는 길, 많은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옆에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작은 마을을 지나 도착한 사리아는 생각보다 큰 지역이었다. 함께 식사를 한 뒤 인연이 있으면 다시 길에서 만나자는 말과 함께 서로의 숙소로 돌아갔다. 단 하루였지만 외로웠던 내 마음이 회복되기에 충분한 하루였다.
그 다음날부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지는 길을 걷게 되었다. 겨울이 우기(雨期)인 갈리시아 지방을 걷다보니 뽀송뽀송한 신발을 언제 마지막으로 신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출발하고 1분이면 속옷부터 가방까지 싹 젖게 된다. 여태껏 고생은 고생도 아니었다. 폭포수 같은 비를 맞으며 걷다보면 눈이 잘 떠지지도 않고 물 먹은 등산화는 내 발을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고 괴롭히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무엇보다도 쫄딱 젖다 보니 오후에 들어서면 저체온 증에 시달리게 되는데 나는 내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난생 처음 경험하기도 했다.
사리아(Sarria)지역에서부터 나는 멕시코 모자(母子)인 로자리오, 까를로스와 동행하였는데 이들과 함께 걸었기 때문에 저체온증에 시달리면서도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었다.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가다보면 물이 범람하여 잠겨있는 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난생 처음 와보는 길이기 때문에 화살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길을 잃을 수도 있어서 웬만한 구간은 물이 허리까지 차더라도 배낭을 머리 위로 들고 건넜다. 그런데 간혹 물살이 너무 센 구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는 안전을 위하여 반드시 우회를 해야 했다. 만약 나 혼자 걸었다면 영어가 안 통하는 스페인 시골 마을에서 난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로자리오와 까를로스와 함께 걸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처럼 멕시코 역시 스페인어가 모국어이기 때문에 우리는 위기 때마다 쉽게 우회 루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읽었던 책에서 아름다운 갈리시아 지방의 마을들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갈리시아 지방에 대해 기대가 컸다. 포르토마린(Portomarin), 팔라스 델 레이(Palas del Rei), 멜리데(Melide), 아수아(Arzua)등 책에서 보았던 여러 마을들을 지나갔지만 비 때문에 땅만 보고 걸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카메라가 망가질 수 있어서 최대한 사진 촬영은 자제했으며 체온 유지를 위해 여벌의 옷을 또 적실 수 없어서 마을 구경은 꿈도 못 꿨다, 순례길을 통틀어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구간이었다. 허나 아무리 비가와도 밥은 먹어야 하는 법, 먹는 것은 포기 못했다. 특히 멜리데에서 먹었던 뿔뽀(PULPO)가 기억에 남는다. 뿔뽀는 갈리시아 지방의 특산물인 문어요리인데 마치 숙회처럼 문어를 찐 다음 올리브오일과 소금 그리고 파프리카 가루를 뿌려먹는 음식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뿔뽀는 대단한 맛이었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짭쪼롬하다. 너무 피곤하면 도리어 많이 못 먹게 되는데 뿔뽀는 몸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과식이 가능한 음식이었다. (다음호 계속)
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 사람들(9)
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 사람들(9)
(위부터) 갈리시아에서 만난 당나귀 끄는 농사꾼, 멜리데에서 맛본 뿔뽀. 사리아 수도원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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