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의 사람들(1)
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의 사람들(1)
'산티아고로 가는 길'
작년 여름, 예기치 못한 화상으로 몇 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원 생활은 건강하게 살 던 내게 큰 사건이었다. 퇴원 이후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밖을 나가고 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힘에 부쳤다. 약해진 체력은 쉽사리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게을러지는 나 자신이 보기 싫었지만 반성도 잠시 일 뿐, 게으름 이라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막연한 자기반성이 아닌 20대 젊은이로써 마땅히 해야 하고, 누려야할 적극적이고 성취적인 삶의 자세로 끌어 줄 수 있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를 통해 산티아고의 길(Camino de santiago)을 알게 되었다. 산티아고 길이란 스페인 서북부 갈리시아 지방의 주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걸어가는 세계 3대 트래킹 코스로 길이는 약 800km에 달한다. 영화는 아들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긴 주인공이 이 길을 걸으면서 많은 일을 겪게 되고 그 사건들을 통해서 상처들이 치유되는 내용을 다룬 영화였다. 흔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상처가 치유된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수동적으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아들 대신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적극적으로 상처에 대면한다. 나는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싶어졌다. 800km가 넘는 길을 걸으면 주인공처럼 나의 상처도 치유될 것이며 치유 속에서 나의 삶의 자세도 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산티아고의 길은 내가 찾던 강력한 무엇이었다. 약해진 체력을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체력 향상이라는 제 1목표를 반드시 이루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로의 변화를 제 2목표로 설정하고 크리스마스 며칠 전인 2012년 12월 인천공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실제로 산티아고의 길은 여러 루트가 있는데 그 중에 나는 프랑스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 길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장(S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길이라고 불린다. 파리에서 생장까지는 주로 떼제베(TGV)라고 하는 고속열차를 타고 간다. 표 끊고 기차 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정말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 강해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고 하는데 여행자로서는 정말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불어를 모르고 그들은 영어를 안 쓰니 길을 모를 땐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을 때 까지 말을 걸어야 한다. 처음부터 나는 쑥스러움을 배낭에 넣어버렸다. 일단 출발점인 생장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묻고 물었다. 다행히 친절한 사람들 덕에 제 시간에 표를 끊고 열차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열차에 오르자 긴장이 풀렸다. 시작이 좋은 것 같다. 헤매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열차가 출발하고 차창 밖에는 이국적인 프랑스 시골풍경이 이어졌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이 길을 걷겠다고 무작정 표를 끊어버린 나의 추진력에 스스로 감탄했다. 또한 산티아고 가는 길의 목적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약해진 체력을 가지고 난생 처음 가보는 길을 12kg이나 되는 배낭을 메고 20km 이상을 매일 걷는다는 것이 물론 두려웠다. 하지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파이팅을 외쳤다.
생장역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도착하니 큰 배낭을 멘 여러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서로 눈인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생장 순례자 사무소로 향했다. 누구든지 이 길을 시작하려면 순례자 사무소에 들려 크레덴샬(순례자용 여권)을 발급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크레덴샬은 순례자들의 신분증명서이자 순례길 위에 있는 알베르게(순례자용 숙소)를 이용 할 수 있는 패스이기도하고, 내가 방문한 성당, 식당 등에서 도장을 받게 되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순례자들이 어떤 길을 얼마동안 걸었는지를 나타내주는 증거의 역할도 하게 된다. 크레덴샬을 발급 받은 나는 이 길의 상징인 가리비를 내 가방에 달았다. 알베르게에 2층 침대에 누워 가리비를 바라보니 가슴이 뛰었다. 진짜 내가 이 길 위에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내일부터 시작이다. 내일은 험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국경에서 스페인으로 가기위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기에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 순례길의 상징인 가리비와 내가 산티아고 대성당에 꼭 같이 도착할 것을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 (다음호 계속 ‘죽음의 길, 그리고 천사’)
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의 사람들(1)
글/ 현예나(28세), 북경기신문 시민기자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국제무역 전문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 2년간 호주에서 The hamilton island enterprise 인턴생활에 이어 45일간 프랑스·스페인 등 서유럽을 홀로 배낭여행을 했다. 본고는 유럽여행 중 산티아고 순례 코스를 경험한 여행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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