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의 사람들(2) '죽음의 길, 그리고 천사'
피렌체 산맥의 산골 풍경
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의 사람들(2)>
죽음의 길, 그리고 천사
설레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날이다. 오늘코스는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이 맞닿아 있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이른 새벽, 출발은 했지만 밖은 아직도 캄캄했다. 이 길은 따로 안내하는 지도가 없다. 그저 길 위에 세워진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걷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노란색 화살표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에 멈춰 선 채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전날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을 발견했고 무작정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점차 어두운 길은 밝아져갔고 동이 트자 노란색 화살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맞는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니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지고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걷다보니 프랑스 국기가 스페인 국기로 변했다. 국경을 넘은 것이다. 아무런 절차 없이 국경을 넘다보니 스페인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레스토랑에서 손짓, 발짓으로 점심을 시키고 나서야 스페인임을 확인했다.
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의 사람들(2) '죽음의 길, 그리고 천사'
노란 활살펴가 유일한 안내 판
나는 원래 점심을 먹었던 작은 마을 까지만 걸을 작정이었으나 오전 산행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피레네 산맥의 반대편인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걷기로 결정하고 오후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었다. 오후 날씨는 급격하게 변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다. 발이 느려진 나는 동행들을 놓치고 혼자 걷게 되었다. 젖은 신발과 옷을 입고 노란색 화살표를 이리 저리 찾으며 걸었다. 혹시라도 화살표를 놓치고 잘못 된 길을 걸을까봐 긴장을 늦추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 끝이 없이 이어졌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다리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이미 산은 진흙바닥이라 앉아서 쉴 수도 없었다. 물은 다 마셔버렸다. 막막했지만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했기에 멀리보이는 오르막의 끝에 희망을 걸고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내딛었다. 겨우 도착한 그 오르막의 끝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 오르막은 또 다른 오르막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목은 타들어갔고, 비 때문에 날이 어두워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날이 지기 전에 움직여야 하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올라오는 길에 보았던 몇 개의 무덤들과 비석들은 그들이 바보여서 여기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산티아고 순례 길을 다룬 미국 영화 에서도 주인공 아들이 피레네 산맥에서 죽는데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몇 걸음 더 걷고 나서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나 있었을까? 주저앉은 엉덩이에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점차 입술이 퍼래졌지만 난 단 한 걸음도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이국 땅, 외딴 산속에서 난생처음 처절한 절망을 맛봐야 했다. 홀로 배낭을 메고 순례의 길을 떠난 것에 대해 후회하며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눈물만 흘렸다. 두려움도 엄습해 왔다. 죽음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되자 나도 모르게 주님께 살려만 달라고 기도했다. 어두운 길모퉁이에 얼마나 더 있었을까? 울다 지쳐 눈물도 더 이상 안 나는 그 순간 기적이 찾아왔다.
어디선가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이럴 수가 한국어였다. 스페인어도 영어도 아닌 한국어라니,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주님께서 보내주신 천사가 분명하다 속으로 소리쳤다! 몇 분 후 나를 발견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경기도 포천에서 온 박 씨 패밀리(Park's Family)라 소개했다. 내 상황을 알게 된 박씨 패밀리는 난생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나에게 뜨거운 정을 보여주었다. 박씨 패밀리의 아버지는 나에게 목적지까지 같이 가자며 내 가방을 자신의 가방위에 얹고는 자신의 등산용 스틱을 내 손에 쥐어 주며 나를 일으켜 세워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까지 안내해 주었다. 혹 내가 뒤쳐질까 나를 에워 쌓기도 했다. 그 때 나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극한 상황에서 낯선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그 분들 내가 만난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만난 첫 번째 사람이었다. 박씨 패밀리들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다음호 계속)
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의 사람들(2) '죽음의 길, 그리고 천사'
첫번째 목적지
글/ 현예나(28세, 아래 사진), 북경기신문 시민기자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국제무역 전문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 2년간 호주에서 The hamilton island enterprise 인턴생활에 이어 45일간 프랑스·스페인 등 서유럽을 홀로 배낭여행을 했다. 본고는 유럽여행 중 산티아고 순례 코스를 경험한 여행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현예나가 만난 산티아고의 사람들(2) '죽음의 길, 그리고 천사'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