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못 다한 언어를 만드는 사람 '방두영'
동두천 세아갤러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방두영 작가(좌측), 이애련 작가(우측)
하고 싶은 말, 못 다한 언어를 만드는 사람
서양화가 방두영
유난히도 추운 12월, 지인의 소개로 척박하기 그지없는 불모의 동두천의 예혼(藝魂)을 지키는 서양화가 방두영 선생을 찾았다. 그는 썰렁한 상가의 모퉁이에 ‘세아갤러리’(세아프라자내) 문을 열고, 20여명의 중견화가들의 그림을 모아 ‘2012송구영신 초대작가전’(12월 15일부터 1월 31일까지)’을 개최하고 있었다. 방 선생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며 봉지커피와 함께 그림 설명을 시작했다.
서양화가 방두영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청각신경을 잃었다. 어린소년의 마음에 절망과 좌절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다. 그러나 삶은 포기할 수 없는 본능적인 것, 그가 생을 절규하며 재기를 다짐한 것은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열병으로 청각신경을 잃은 것은 일곱 살 때의 일이다. 신은 그에게 신기를 내려주어 신품을 만들도록 했다. 이른바 잡스럽고 속된 인간들의 혐오를 못 듣도록 하기위해 신은 그에게서 청력을 거두어갔다. 화가 방두영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갓 20대에 들어서다. 역시 신은 그를 버리지 않고 집중력과 손재주와 영혼의 영력을 부여하여 화가가 됐다.
미술평론가 김남수씨는 방두영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20대 초반부터 그는 종교와 무속 등 불가사의한 인간의 실존 등 영원한 숙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하여 고민하고 많은 갈등과 고노에 빠지기도 했다. 생명의 존귀함과 신체적장애가 주는 비애, 이는 그에게 이 시기에 영원한 물음이자 꼭 풀어야 할 회두였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동양사상의 사유에 근간을 둔 영혼과 시공의 영원성, 다시말해 무(無)와 공(空)의 사상, 음양오행의 이치를 깨치고 심취하기도 했다. 특히 이 무렵 그가 깨친 것은 세계 그 어느 민족에게도 없는 우리민족 특유의 한(恨)의 정서(情緖)를 발굴한 것이다. 스스로의 자화상이기도한 이 한의 역사는 한 때 우리 민족의 중심사상이요, 예술가이면 그 누구나 한번쯤 고민했던 작품의 소재였다.
40대에 접어들면서 그의 예술은 점점 성숙해지고 자연으로 귀의를 한다. 자역 속에 전개되는 인간의 역사와 흔적들, 아무리 인간이 문명의 힘을 빌어 크자고 해도 역시 왜소한 자연의 한부분이라는 이치에 탐닉했고 작가 방두영의 작품 속에 대 자연은 인간들의 본향이자 마지막 안식처임을 주장하는 작품의 주제들이 이 무렵에 등장을 한 것이다. 포괄적이고 선과 면의 확산과 응축 등 형상의 이미지들이 작가 특유의 조형언어로 전개 됐던 것도 이 무렵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른바 추상표현주의 성향이 가장 강렬했던 작가 특유의 언어가 구사되었던 것도 이때였다.
50대, 60대에 들어와 작가는 자연 속에 감추어진 생명의 신비, 이를 연출해 내는 자연의 오묘한 힘과 이 신비를 깨치기 위한 작업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생명이 움트고,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다시 생명의 신비가 반복되는 자연의 섬리와 윤회에 매료되어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작가는 과연 인간과 자연의 함수관계와 광대무변한 우주의 역사와 함께 언제 어디쯤 끝이 있을 것인가를 자문자답하면서 작품제작의 몰아경에 빠져있다. 작가 방두영은 자연의 위대함을 확인하기 위해 가끔 무인고도와 같은 외딴 섬의 우뚝 솟은 암벽에 오를 때가 있다.
바다위의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망하면 자연의 웅장함이 가냘픈 인간의 가슴속에 엄습해 오고 만물의 영장이라 뽐내는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새삼 느낀다고 작가는 술회하고 있다. 인가의 역사와 함께 영원한 우주의 신비를 밝히지 못 한 채 무한한 시공으로 흘러 갈 자연의 삼라만상에 심취하여 숙연한 마음으로 작가는 오늘도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고 평했다.
작가 방두영 선생은 1947년 강원도 출생으로 신체장애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고, 각종 국·내외 초대전 등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늘 그의 이야기 속에 묻어나는 느낌은 작가로서 고독하고 외로운 수행자의 길을 걷지만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그의 길만 걸어가는 올 곧은 화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참 좋은 느낌, 참 좋은 시간이라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취재/ 이애련(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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