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째 연극무대, '천의 얼굴 조한희 여배우'
최송림이 만난 사람
백 번째 작품 연극무대, '천의 얼굴 여배우 조한희'
연극배우 조한희(59세) 연기자는 <쥐덫>(아가사 크리스티 작/ 김성노 연출)의 미세스 보일 역을 깔끔하게 소화해 냄으로서 백 번째 연극작품 무대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1972년 <이열치열>로 데뷔한 후 40년 연극인생의 값진 수확이요 쾌거다. “데뷔작은 경기도 단막극제로 기억하는데, 금상을 탔지요. 그것을 작은 용기와 디딤돌로 국립극단 단원이 되어 6년 간 몸담았던 추억이 젊은 날의 초상화처럼 어제인 양 손에 잡힐 듯 선한데, 벌써 세월이…”
지난 8월 2일부터 오픈 런 공연 중인 서울 대학로 SH아트홀(대표 권순명)에서 만난 그녀는 골수연극인으로서 질박한 꽃향기를 터뜨리듯 활짝 웃는다. 그녀는 후배들에게 연극대모로 통할만큼 연극외길을 고집해온 대표적 대학로 지킴이 여배우다. “배우는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연기로 감동을 퍼뜨려 그들의 삶의 태도를 바꾸는 바이러스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무대배우로서의 단련된 철학이 보석처럼 번뜩이는 그녀는 그 많은 출연작 중 대표작 하나만을 자랑하라니까, <유리동물원><산불><밤주막><나비> 등을 제치고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주저 없이 꼽는다.
한국연극배우협회에서 1993년 선보인 작품인데 그녀는 타이틀 롤을 맡아 자신의 전매특허인 예의 그 질박한 맛과 솔직한 외곬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관객들과 매스컴의 갈채를 받았다. 요즘도 심심찮게 평자(評者)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자타가 공인하는 그녀의 대표작이 맞는 것 같다. 고리키 하면 사실 필자도 문학청년 시절 마음과 영혼의 스승이었음을 고백한다. 그의 <나의 대학>도 무대에 한번쯤 올랐으면 어떨까 싶다. 김성노 연출은 현 한국연극연출가협회장이다. 혹 협회 차원에서도 가능하다면, 필자와 <돈><아버지의 가수> 등 두세 편의 작품을 같이 한 인연으로 감히 공개적 제안을 해도 될까?
그야 어쨌든 조배우의 말을 더 귀담아 들어보자. “예술 하는 것과, 누구를 사랑하는 것과, 죽는 것은 남이 대신할 수 없잖아요? 특히 우리 연극예술은 그때그때, 매 순간순간마다 달라서 그야말로 찰라 예술이라고들 하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지금도 쉬지 않고 흘러가는 삶의 장면들을 한 치도 되돌릴 수 없는 걸요. 그런 점에서 굳이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연극과 인생은 닮았지요.” <쥐덫>에서 연기하는 전직여판사 보일처럼 논리정연하다. 그녀는 요즘도 한가로우면 도서관을 찾아 책읽기를 좋아한다. 그만큼 독서량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건강을 자전거로 다스린다는 그녀는 가끔 한강변을 달리는 모습과 만날 수 있다. 그녀는 남의 공연을 많이 보는 걸로도 유명하다, 김길호 원로배우 등 연극계 어른들을 모시고 공연장을 찾는 풍경이 아름답다. 그녀 자신이 출연하는 공연장에는 2시간 전에 도착해야 직성이 풀리고 마음이 평화롭단다. 그만큼 여유와 상식,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그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희귀종(?), 아니 종결 천연기념물 같은 순수열정파인지 모른다.
연극인들이 뽑은 연극인상(1990년)을 받았는가 하면, 한국연극배우협회부회장 등을 맡아서 열심히 배우들의 뒷바라지도 했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원한 현역 여배우로서 오늘도 연극인생을 불태우는 그녀의 싱그러운 무대는 연륜과 함께 날로 더욱 빛나리라 본다. 글/ 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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