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말짱하게 하는 음료로서의 커피와 성적인 충동을 억제하는 수단으로서의 커피, 이러한 방향으로 커피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는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세력이 작용하고 있는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영국의 청교도주의, 더 일반적으로 프로테스탄트적 윤리는 커피를 이러한 의미에서 규정하고 그것을 그 영육(靈肉)을 위한 음료로 선언한다. 의심할 바 없이 커피는 고도로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음료이다. 그러나 이 측면만을 보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분명히 커피는 17세기 이래 발전되어 온 바와 같은 합리주의적인 유럽 문명에 적합한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
커피와 프레테스탄트 윤리
근대의 약물학은 그것을 입증한다. 커피는 함유된 카페인을 통해서 중앙 신경계통에 영향을 미친다. 커피는 20세기의 한 대표적인 학술 서적이 표현하듯이, “이성의 활동을 증대시키고, 인지 과정들과 연이은 사고들을 촉진시키는 동시에 보다 분명하게 만들고 우울증에 빠지게 하지 않고 정신 활동을 자극한다.” 바로 이 특성들이 커피를 부르주아적 근대의 음료로 만드는 것이다. 유럽 문화에 도입된 시점이 이 역할을 확증해 준다. 17세기는 철학에서 뿐만 아니라 물질생활의 본질적인 영역들에서도 합리주의의 세기이다. 이 시기에 대두하는 절대주의 관료국가는 합리주의의 관점에 따라 건설되었다. 새로이 등장하는 매뉴팩처들에서의 노동은 합리적으로 조직화되었다. 합리성과 타산적인 태도가 이 모든 것들의 배후에 서 있는 부르주아적 정신을 특징짓는다. 17세기의 부르주아적 인간을 정신적인 태도에서나 육체적인 태도에서나 앞선 세기들의 인간들과는 구분이 되었다. 중세적 인간은 대부분 노천에서 육체노동을 한다. 부르주아는 점점 더 정신노동자로 변해 간다. 그의 일터는 사무실이고 신체는 앉은 자세를 취한다.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상은 시계처럼 동일한 형태로 규칙적으로 기능하는 것이다(칸트의 생활 방식을 회상해 보라).
이 새로운 노동과 생활 방식이 전 조직에 관계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커피는 여기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약제로 작용한다. 커피는 인체에 스며들어 합리주의와 프로테스탄트적 윤리가 이데올로기적, 정신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화학적, 약리학적으로 완수한다. 인체에 흡수된 커피는 인간의 생리적 상태를 합리주의적 원리의 필요에 따라서 변형시킨다. 결과는 새로운 요구들에 따라 기능하는 합리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 진보적인 신체이다.
출처/ ‘기호품의 역사’ 볼프강 쉬벨부쉬(Wolfgang Schivelbusch) 지음, 이병련 외 옮김(서울, 한마당, 2000) 58~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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