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의 문화 유산-신숙주 묘
훌륭한 문장가 학자로 한글창제 남다른 공두 차례 걸쳐 여진 정벌에도 나서..
의정부시 고산동 구성말에는 신숙주의 묘가 있다. 무송군부인 윤 씨 묘와 나란히 쌍분을 이루고 있고, 묘전에는 묘비석. 상석. 문인상. 신도비. 한글창제사적비 등 각종 석물들이 있는데, 그 중 한글창제사적비는 최근에 건립한 것이다.
신숙주는 조선초기의 학자이며 정치가다. 자는 범옹. 호는 보한재. 희현당이고, 고령인 공조참판 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종 때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여섯 임금을 충성으로 보필하였고, 특히 계유정란 이후부터는 조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업적을 남겼다.
신숙주는 세종 20년(1438) 생원진사과에 합격하고 이듬 해 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집현전부수찬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연이어 훈련원주부. 일본통신사 서장관. 대체학. 도체찰사.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 그의 관직은 참으로 화려하다. 집현전학사로 있을 때는 명나라 학자 황찬을 무려 13회나 찾아가 음운을 배워 왔으며, 명의 사신이 올 때마다 태평관에 직접 나가 그들과 함께 음운에 대한 토론을 자주 함으로써 한글창제에도 남다른 공을 세웠다.
집현전교리로 있을 때는 수양대군이 명의 사절로 떠나게 되자 종사관으로 함께 갔다. 이때부터 수양대군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의 재주를 인정받게 됐고, 뒷날 계유정란 때 수양대군을 돕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자동차로 찾아가는 길/ 의정부시내에서 청학리방향으로 가다 송산교도소 정류장을 지나면 첫 번째 신호등에서 고산초등학교방향으로 좌회전하여 1차선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신숙주 묘소 안내판이 나온다.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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