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석 연출(왼쪽)
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왜상연극 견인차 이기석 연출
부천의 극단 ‘원미동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이기석 대표(사진, 왼쪽)와는 오래 전 일찌감치 무대에 올린 <열대야> 작가로 인연을 맺었는데, 이달 초 7월 2일부터 이틀간 오정아트홀에서 공연한 <망각의 강>까지 포함하면 세 번째 작업이다.
이번 작품과 2019년 선보인 두 번째 <장부의 길>(손현규 연출)은 이른바 왜상(倭傷) 연극으로서 주목을 끌었다. <장부의 길>은 일제강점기 ‘조국을 선택한 아름다운 청춘’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일대기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작인 동시에 극단 창립 30주년 기념공연을 겸했었다.
<망각의 강>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55년 만에 캄보디아에서 귀국해 국내 혈육과 한국 국적을 되찾았던 ‘훈할머니’ 이남이 여사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함으로써 일본의 만행과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치유하는 방법론을 다 함께 찾고 싶었다고나 할까?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상처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가 아닌가? 우리 한반도에서 무수한 목숨을 앗아간 그 6․25 난리 통에 태어난 전쟁둥이 작가가 나다. 이런 원죄(?)로 나는 <도라산 아리랑><조통수(祖國統一喇叭手)><색동가죽신>을 비롯한 통일연극시리즈를 꾸준히 내놓았다. 그리고 남북분단의 태생적 원인을 제공한 일본, 왜상희곡 시리즈로 <우리들의 광시곡><이비야><뮤지컬 백범 김구> 등등을 발표, 무대에 올렸다.
경기문화재단이 올해 2022년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작으로 선정, 지원을 받아 초연한 <망각의 강>도 당연히 왜상희곡이다. 특히 이기석 연출이 극단 대표로서 제작뿐 아니라 직접 연출까지 맡아 왜상연극의 확실한 선두 견인차가 된 셈이다.
그의 올곧은 연극정신을 바탕에 깐 역사관과 연출력이 돋보인 <망각의 강>이다. 첫날 첫 공연부터 배우들과 하나로 어우러진 연출의 힘이 무대에 그대로 묻어났다. 주인공 훈할머니 역의 김성숙 배우와 이남이 역의 김서하, 인경훈, 남상백, 오인순, 민규미 등등의 연기자들과 홍서벽 안무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호흡이 맞았다. 미루어 짐작되는 연습량이 충분히 엿보였고, 영상자료 또한 적절히 활용했다. 그만큼 객석을 메운 관객들의 반응이 참 뜨거웠다는 말씀이다.
“현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와 국민의 자격으로 진정한 가치관과 사명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는 연출의 말도 의미심장하다. 그의 말은 더 계속된다. “과거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일본인들의 극악무도한 악행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커다란 과거사일 것이다. 지워버리고 싶은 망각의 강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우리가 반드시 회복시키고 지켜야 할 기억의 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는 극단대표와 연출 못잖게 연기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동치미><마술가게><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등에 출연한 중견배우다. 요컨대 전천후 연극인으로서 활동무대의 폭도 넓다. 한때는 서울 대학로에서 극장까지 운영하며 오랫동안 장기공연 둥지를 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천생 타고난 이른바 전업 ‘연극쟁이 팔자’가 아닌가 싶다. 이제는 또 하나 왜상연극 견인차로까지 자리매김한 이기석 연출의 다음 무대가 기대된다. 어느 작가의 희곡인가와는 상관없이 연극동지로서 말이다. 그땐 나 역시 순수 관객으로서 이기석표 왜상연극 견인차 뒤 칸에 올라타 공연을 재밌게 관람할 것이다. 글/ 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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