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일 교수의 재미있는 한자 이야기 '여자의 일생(3) '강보(襁褓)'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옛날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조개를 꿰어 목에다 걸어 주곤 했습니다. 그 글자가 바로 ‘간난아이 영(嬰)’입니다.
‘조개 패(貝)’자를 두 개 써서 조개를 많이 꿰었다는 뜻이 되고 그 아래에 여자를 그려 목에 조개를 걸어 주었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아들 자(子)는 원래 ‘아들을 뜻한다’기 보다는 原來(원래) 아이를 가리키는 ‘아이 자(子)’입니다. 어린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있으며 다리를 하나로 나타내었습니다. 그 理由(이유)는 어린 아기이므로 걸을 수 없으며 아직 襁褓(강보)에 싸여 있는 模樣(모양)이기 때문입니다.
襁褓는 포대기를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 아(兒)’자는 ‘절구 구(臼)’에 儿을 붙여 아이를 나타낸 글자입니다. 어린아이의 머리는 몸에 비해 유난히 크며 아직 숫구멍(숨구멍)이 닫히지 않은 狀態(상태)이므로 그 모양과 類似(유사)한 臼에 儿((사람의 다리 形象(형상)을 나타낸 글자로 이름은 ‘어진 사람 인’이지만 ‘어질다’의 뜻과는 無關(무관)한 글자입니다))을 붙여서 어린 아이를 나타내었습니다.
두 다리가 있으니 ‘아들 자(子)’ 보다는 더 자란 아이를 意味(의미)합니다. 그 후 아이가 더 자라면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는데 그 글자가 ‘아이 동(童)’입니다. 童의 字源(자원)은 눈을 찔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를 말하며 物件(물건) 꾸러미를 짊어지고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글자입니다. 그 옛날에는 戰爭(전쟁)에서 지면 아이들이 捕虜(포로)로 끌고 와서 反抗(반항)을 하지 못하도록 한쪽 눈을 찔러 보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고분고분해져 일을 시키기에 좋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을에 서서 뛰어 노는 아이가 아닌 것입니다. 그 옛날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정말 多幸(다행)이지 않나요? 다시 말해서 포로로 잡힌 아이들은 사람 取扱(취급)을 한 것이 아니라 짐승 取扱(취급)을 한 것입니다.
아기를 保護(보호)해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예나 至今(지금)이나 어머니가 아닌가요? 바로 그 글자가 ‘지킬 보(保)’입니다. 이것의 모습은 강보(襁褓)에 싸인 아기를 어미가 업고 있는 모습을 그린 글자입니다. 따라서 아기를 보호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글자입니다.
여하튼 어머니의 아기 사랑은 恒常(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글/ 경문 김대일(사단법인 한자진흥회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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