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산 목사의 '진짜 한국인?'
진짜 한국인?
방글라데시에서 온 A씨는 2011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런데 얼마 전 황당한 차별을 경험하였다. 한국에서 함께 사업을 하고 있는 동료의 동생이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은 경험이 있는 A씨가 어학연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하였다. 작년 A씨의 동생도 어학연수를 했던 모 대학교가 좋을 것 같아 그 학교에 찾아가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의논하였다. 우선 그 대학교의 한국어학당에 입학하려면 지원서, 여권 등과 함께 신원보증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신원보증은 별다른 조건이 없고 단지 성인 한국인이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A씨는 본인도 한국 국적을 취득해서 성인 한국인이니 신원보증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대학교 직원은 “진짜 한국인”이 보증을 서야 한다고 하였다. “진짜 한국인???” 그렇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성실히 세금을 납부해온 A씨는 가짜 한국인이었단 말인가? A씨는 그 자리에서 진짜 한국인의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직원에게 따졌고, 잠시 어리둥절하던 직원은 문득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A씨에게 사과하였다.
최근 한국에서는 반 다문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외국인범죄 척결연대>라는 곳에서 법무부를 찾아가 정책건의를 했다는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건의사항이 있다. “관광비자로 입국하는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저개발 국가의 국민들은 입국시 1천만원 이상의 출국보증금을 선납한 후 출국 시 환불조치”, “과도한 외국인을 출연시켜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모든 언론기관에 자제를 요청하고 방송위원회는 방송중지결정 및 권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차별적인 움직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순혈주의와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에 길들여진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주노동자와 이주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을 찍고 있는 왜곡된 시각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인종차별과 같은 행위는 중범죄로 다스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의 차별에 대한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지난 3월 6일 40여개 시민 사회단체로 구성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는 국가인권 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요구를 하며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2011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아동권리위원회는 각각 최종견해로 한국정부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시급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였다. 2012년 8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위의 지난 권고들을 상기시키면서 한국정부의 신속한 행동을 촉구하였다. 또한 UN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에서 한국정부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그동안 아무런 성과를 내 놓지 못하다가, 2012년 UPR에서 또다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받자 올해 2월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다시금 밝히는 수동적인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변화시키고 헌법의 평등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소수가 아닌 차별 받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인권기본법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A씨가 진짜 한국인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는 한, 이와 유사한 상항에서 피해를 보거나 권리를 침해당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다문화 사회”라는 구호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차별금지법은 이런 사회에 경각심을 주고,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방패의 역할을 하고 정의롭고 공정하게 실현될 수 있는 인권기본법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정부는 최대의 사회악은 차별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힘이 아닌 공정한 법이 실현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 방패가 되어 주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차이와 다름을 차별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 모든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여 차별 없는 인권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진짜 한국인이 아닐까 글/이재산(목사, 서울이주노동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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