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교수의 '우리는 패망한 베트남을 잊었는가!'
<시론>
우리는 패망한 베트남을 잊었는가!
1975년 베트남(월남) 티우 대통령은 부통령에게 나라를 맡기고 프랑스로 도망을 갔다. 그 후 몇 달 뒤 부통령이 항복을 하자 월남의 대통령궁에 있던 월남기가 내려지고 월맹기가 올라가면서 월남이란 국가는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 당시 월남대학생의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던 글을 샘터잡지에서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나라를 잃었으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 애국가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애국자라고 큰 소리 치며 매일 데모를 주동하던 사람들은 나몰라라며 외국으로 도망쳐버리고 묵묵히 말없이 돕던 사람은 오갈 데가 없으니, 38년 전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며 절규하던 월남대학생이 쓴 글이 지금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까지 바쳤지만 부정부패와 무능, 분열과 불신의 늪은 너무나 깊어 월남은 허무하고 비참하게 무너졌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가 망하는 데에는 많은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에 967번이나 외세의 침략을 받았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20세기 초 우리나라도 오랜 기간 부패와 지도자의 무능 때문에 국제 정세의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에도 너무 안일한 생각과 외세에 의존하려다가 무참하게 무너지고 짓밟혔던 경험이 있다. 월남의 경우도 정치지도자의 부패와 무능, 사회혼란과 국민의 분열 때문에 세계 2위의 공군력과 세계 3위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이렇게 국가의 붕괴에는 사회지도층의 부패와 무능, 갈등과 분열이 초래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에 터 잡은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이념 아래 옛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국가로 나뉘었다. 동서의 이념분쟁은 상당수 신생국가를 괴롭혔다. 한반도의 분단과 베트남의 분단 등이 그 대표적 예다. 1960년대 우리는 자유 월남을 지키기 위하여 미국의 요청에 따라 파병하였다. 월남과 월맹은 분단된 이후 소위 통일이란 기치 아래 오랫동안 싸웠다.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이념 전쟁을 벌이던 동서진영 서로 간에 세력을 내세우기 위한 좋은 기회였다. 월남과 월맹은 각기 군사지원국을 통하여 피를 흘렸다.
이도 모자라 미국은 지상군을 파견하면서 본격적으로 개입하였고, 사회주의 국가들도 월맹을 지원하면서 전쟁이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많은 인명이 전쟁을 통해 희생되자 국제여론은 평화적 해결로 모아졌고, 197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월남에서 미군과 한국군은 철수하였다. 그러나 휴전협정이 맺어졌던 1973년은 평화의 시작이 아니라 공산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휴전협정 이후 월남에는 수많은 단체와 언론사가 양산되어 사회 혼란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종교인과 학생, 반전운동가와 인도주의운동가들이 정권 타도와 미군의 완전한 철수 등 외세의 배격을 외쳤다. 이들 중 상당수는 월맹이 월남을 붕괴시킨 후 베트남 공산당과 인민혁명당에서 침투시킨 간첩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월남의 패망은 국가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간첩)에 의해서도 붕괴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월남의 패망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내부의 적은 드러난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섭다는 것, 통일은 이상(理想)이 아니고 현실(現實)이라는 것,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이를 쟁취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헌법국가이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정의를 추구한다. 국민은 헌법이 요구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민주주의란 이유 때문에 관용을 베푸는 것은 이상(理想)에 불과하다는 것이 인류사의 경험이고 교훈이다. 우리는 전무후무한 3대 세습국가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겉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외치는 북한은 핵으로 우리나라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나라의 정세가 긴장된 분위기에서도 정치인들은 자기당의 이익만 생각하고 국민들의 걱정에는 관심이 없다. 북한이 연일 전쟁을 위협하고 있는데 많은 국민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이 되었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국민이 정치인을 걱정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꼭 명심하길 바란다.
글/ 박태원(본지논설위원, 초성초등학교장, 서정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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