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일의 문화 에세이 '시간에대하여'
이관일의 문화 에세이
시간(時間)에 대하여
시간이란 무엇일까? 사전은 시간이란 ‘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 또는 그 단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길이, 질량과 같이 다른 물리량을 정하는 기본단위이다. 이 같은 물리적 시간을 정하기 위해 현재는 원자시계 등을 이용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학자는 이 같은 물리적 시간과 달리 심리적 시간과 생리적 시간도 있는데 이것은 개인의 생리조건이나 경험의 질 및 양에 좌우되는 주관적 시간이라며, 같은 길이의 물리적 시간이라도 유년기의 생리적 변화는 장년기, 노년기의 변화보다 그 정도가 심하다고 했다. 또 장년기를 지나면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고, 강렬한 경험이 많이 쌓이면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등 심리적 및 생리적 시간은 보편적, 물리적 시간에 대하여 주관성이 강한 개인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튼 우리에게 과학적 의미의 시간이 아닌 삶 속에서의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분명 시간은 속도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시계(時計)는 없지만 시간(時間)은 많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에게 시계는 있지만 시간은 없다고 한다. 많은 생각을 주는 말이다. 즉 우리들은 시계를 쳐다보면서 시간의 외적 흐름에 지나치게 몰두하기보다는, 자연과 사회 속을 흘러가는 내적인 시간의 리듬에 민감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깨달음의 기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전적 의미처럼 내가 태어난 시각(時刻)에서 죽는 그 시각의 간격이 내가 가진 시간이라면 내가 생성되고 또 다시 돌아갈 그 영혼의 보금자리에 정착하는 날까지 스스로 다듬고, 깨달으며, 연마해야 할 나만의 수련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것이 과학적 의미의 시간과 다른 시간의 시작과 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 우문이지만 시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먼저 과학자들은 시간의 시작과 끝은 존재한다고 한다. 태양계 모든 우주가 태어나기 전에는 시간이 없었다. 모든 게 그대로만 정지해 져있던 상태에서 블랙홀에 의해 만들어진 '빅뱅'에 의해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에는 마지막이 있듯이 시간에도 끝이 있다고 한다. 혹시 '빅 크런치(대붕괴big crunch)‘를 아는지 모르겠다. 빅 크런치란 ’빅뱅(대폭발 big bang)‘의 반대되는 단어로 우주가 한 공간에 빨려 들어간다는 과학적 용어다. 모든 우주는 하나의 공간에 빨려 들어갈 것이고 또 다른 우주는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문제에 대해 무서워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몇 십 억 년 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참 세월이 빠르게 흐른다. 작년 오늘 나는 내 친구를 한 명 잃었다.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정말 보고 싶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오늘 그를 기리며 어디 가서 막걸리나 한 잔 할 요량이다.
빠삐용(Papillon 1973년 작 스티브 맥퀸, 더스틴 호프만 출연)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어느
날 주인공이 꿈속에서 저승사자를 만난다. 주인공은 나는 살인도 안했으며 강도도 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하지만 저승사자는 “너는 시간을 허비한 죄가 있다”라고 했다. 30여 년 전 본 그 영화의 장면과 대사가 지금도 생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조물주에게 물어 보건데 “진정 시간을 뒤로 보낼 방법은 없습니까?”
글/ 이관일 기자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