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停戰)은 종전(終戰)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화 플러스
정전협정 60주년의 현황과 과제
정전(停戰)은 종전(終戰)을 의미하지 않는다
본고는 통일부 홈페이지에 수록된 정전협정 현황과 과제를 정리한 것으로 통일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최근 남·북한간의 갈등과 대립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번 주 평화 플러스에 요약 정리하여 게재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작금의 남북관계는 갈등과 대립 속에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발사와 3차 핵실험에 이어 정전협정의 백지화를 선언한 상태에서 전에 없이 한반도의 안보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북한의 정전협정의 백지화 선언은 정전협정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사실상 다시금 남북관계가 군사적 대결과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대남위협인 것이다. 최근 핵실험과 전쟁상태 돌입선언 등 일련의 북한의 대남위협으로 한반도 위기를 한층 고조시킨 2013년은 때마침 한반도에서 전쟁행위를 중지한다는 것을 선언한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전협정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이 일시 중단한다는 것을 당시 전쟁에 참여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연합군 측과 북한과 중국 측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약서에 각각 사인함으로써 체결되었다. 이로써 한국 전쟁은 중단되었으나 정전(停戰)은 엄밀한 의미에서 전쟁을 끝내는 종전(終戰)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전의 사전적 의미는 '교전 중 어떤 목적을 위해 한때 서로의 교전을 중지함'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교전(交戰)을 중지하였을 뿐이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래 정전은 전쟁을 하는 쌍방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고 긴장이 고조된다면 언제라도 전쟁이 다시 재개될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실제 한반도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래 오늘 날까지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2013년 3월 현재 북한의 일방적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상황은 정전이라는 잠재적인 위협상황에 실제 전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해져 한층 위험한 상황을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연례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빌미로 ‘키리졸브’군사연습이 시작되는 3월11일부터 “정전협정을 완전히 백지화해버릴 것이다”라는 선언은 본래 정전협정이 어느 일방에 의해 수정, 보완할 수 없도록 명시된 것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1953년 7월 27일부터 발효된 정전협정 제5조(부칙)의 제 61조는 “정전협정에 대한 수정과 증보는 반드시 적대 쌍방 사령관들의 호상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당초 정전협정은 서언과 전문 5조 63항, 부록 11조 26항으로 이뤄졌으며 협정체결이후 현재까지 여러 항목의 추가합의가 있었고 중지된 항목도 있었으나 “쌍방의 합의에 따라 다른 협정으로 교체될 때까지 계속 효력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어 협정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해 2012년 12월 12일 ‘은하 3호’라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한데 대한 유엔의 제재결의(2087호)에 맞서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강행한데 이어 유엔안보리의 추가제재 합의와 한·미합동군사연습 등에 반발하며 정전협정의 백지화를 선언하였다. 북한의 정전협정의 무력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북한은 그동안 정전협정을 무효화하는 조치와 함께 군사적 도발 등을 되풀이 해 왔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전제로 평화협정을 주장해왔으며 1991년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합의에 의해 유엔 측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한데 반발, 1992년 8월 북한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를 소환함으로써 정전체제를 유명무실화하는 시도를 본격화하였다.
휴전협정 당시 군사정전위원회는 국제연합군과 공산군 장교로 구성되어 있었고 스위스,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로 구성된 중립국 감시위원회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북한의 요구로 1993년 4월 체코 중립국감독위 대표단이 철수한 데 이어 1994년 12월 중국 군사정전위 대표단이 1995년 2월 폴란드 중립국감독위 대표단이 출국하여 정전협정이 무력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어 북한 외교부는 ‘새로운 평화보장체제’ 내세우며 미·북평화협정 체결 요구와 함께 1994년 5월 군사정전위 공산측 대표부를 대신하는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하는 한편 1996년 4월에는 ‘정전협정 준수 임무 포기선언’ 을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에 우리와 미국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가하는 4자회담(1997~1999, 6차례)과 ‘유엔사-북한군 판문점 장성급회담’ (1998~2002)개최로 대응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2년 8월 제14차 회담을 끝으로 판문점 장성급 회담에 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2003년 3월부터는 정례적인 군사정전위 참모장교 접촉마저 중단하고 유엔사 해체를 주장했다. 1990년대부터 되풀이 되어온 북한의 이 같은 정전협정의 무력화 시도는 미국과 직접 담판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북한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켜 미국에게 평화협정에 응하게 하기위해 정전협정의 무력화 시도와 함께 북한군 임진강 침투와 잠수함 침투, 무장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도 등의 도발 등을 감행하기도 했다.
최근 북한의 정전협정의 백지화선언은 위와 같은 이전의 정전협정의 무력화 시도의 연장선에서 미국과 직접 협상에 임하겠다는 것이며 나아가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의 백지화를 선언한 이후 정전체제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노동신문’ 을 통해 역설하였다. “조선정전협정은 조선반도에서 모든 외국 군대를 철거시키고 항구적 평화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과도적 조치였다. 세계 전쟁사를 놓고 볼 때 대체로 정전협정 체결은 일정한 과도기를 거쳐 평화협정 체결에로 이행하였다”고 주장하며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돼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정전협정 서명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을 제외한 채,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과 직접 체결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전협정에도 한국정부의 위임을 받은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한 것이므로 한국은 남·북한 문제의 실질적 당사자로서 분명 정전협정의 당사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평화협정을 미국과 체결하기를 원하는 것은 미국을 통해 북한의 체제 생존과 유지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다. 북한에게 있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은 그들 체제생존에 가장 위협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과 상호 불가침합의 속에 각종 제재해제를 통해 안전 보장과 경제지원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휴전협정 체결 이래 미국에 대한 적대감과 비난을 지속하는 가운데서도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왔던 것이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정전이 아닌 종전을 선언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는 그들의 체제생존을 위한 수단적 의미의 평화협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핵과 미사일 발사 위협을 지속한 채 평화협정의 당사국이 되어야 하는 우리나라를 정전협정의 서명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정전협정의 파기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전협정은 북한이 무력화 시도를 한다하더라도 지난 60여 년 동안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왔으며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대체되기까지는 유효한 상태로 어느 일방의 백지화선언으로 폐기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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