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봄꽃과 사랑'
생각해 봅시다
봄꽃과 사랑
겨울의 무섭게 부는 찬바람에도, 20도 이하의 꽁꽁 얼어붙은 영하의 날씨에도 생명력을 지닌 모든 동·식물은 죽음을 이기려고 잠을 안자며 최대의 인내심을 갖고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중에 생명력이 가장 질긴 쑥은 봄기운에 새 힘을 얻어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봄소식을 알린다. 쑥을 선두로 온갖 새싹들이 솟아나고 작은 싹을 돋으며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진짜 봄소식을 전하는 꽃은 진달래꽃이다. 진달래가 만개(滿開)하여 연분홍 꽃물결이 마을 여기 저기 수를 놓고 진달래 천국이 펼쳐지면 봄나물을 캐는 시골 아낙들의 바구니에도, 나무꾼의 지게 위, 나무 위에도 한 다발의 진달래꽃이 실려 있다. 어렸을 적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진달래꽃을 따서 빈병에 꽂아 놓고 봄의 향기와 정취를 즐기던 옛 시절이 생각난다.
빨간 진달래가 만발하면서 봄소식을 알리면 여기 질세라 산수유도 노란 꽃으로 봄을 알린다. 학교 정원에는 파란색의 새순, 잔디와 연분홍색 꽃 잔디가 봄을 자랑한다. 어렸을 때 배고픔을 참지 못해 진달래꽃을 따서 먹으며 마음껏 즐기던 추억이 아른거린다. 물로 배고픔을 달래던 시절, 진달래꽃은 보기만 해도 배불렀고 진달래꽃을 따서 입에 넣으면 젤리(jelly) 녹듯이 녹아버린다. 삶의 여유와 낭만을 즐겼던 시절, 진달래가 만발하면 온 세상의 풍경은 아름다운 천국이 되었다. 내가 뛰놀던 고향은 자그마한 어촌 마을이었지만 뒷동산이 있어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뛰어 놀다가 장난기가 발동하면 새가 까놓은 알을 깨먹고, 푸득거리며 날개 짓을 하는 새를 쫓아가 잡기도 하고 토끼도 잡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그 시절 봄의 추억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봄에 피는 작은 풀꽃은 추운 겨울동안 죽은 듯 색깔을 잃고 지내다가 대지에 봄기운이 돌아오면 자기의 본색(本色)을 띄우며 꽃 냄새를 풍긴다. 특히 봄맞이꽃은 실같이 가는 꽃대가 올라와 끝에 흰 꽃잎 넉 장이 활짝 펼친다. 봄맞이꽃을 보고 걷다가 뒤돌아보면 몇 송이가 새로 피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봄에 피는 작은 풀꽃은 우리가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희망이고 발자취였다. 이 세상에 봄은 우리의 행복이요 사랑인가보다.
청춘(靑春), 회춘(回春)… 봄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말들이다. 이 세상에 봄이 있고 봄소식이 있기에 풀과 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당신의 가슴 속에 형형색색 봄꽃의 추억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모진 바람, 세찬 바람, 꽁꽁 얼어붙는 겨울, 찬바람과 눈바람의 매서운 추위가 있기에 우리는 봄을 더 기다리고 꽃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꽃은 사랑을 찾아가는 세상의 입술이다. 살포시 입 맞추고 싶은 꽃은 내 마음 속에 거짓과 허위와 턱없는 허울과 가식을 태우는 불꽃이다. 꽃은 항상 환한 미소를 보이지만 아름답고 예쁘다고 자랑하지는 않는다. 꽃은 우주의 생존 본능이다. 새로운 생명이 샘솟고 세상 살기가 각박하고 힘들어도 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꽃의 생존의 법칙을 보면서 우리는 희망의 끈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다.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의 ‘안심가’도 바로 지조와 절개의 단심을 잘 표현해준다. 봄에 피는 모든 꽃은 애정의 색상이 아니라, 지조와 절개, 충절을 표현하는 단심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인간은 꽃 앞에 겸손하고 작아져 아름다운 사랑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겠다. 오늘이 5월(月)의 초순인데 지금 바깥 날씨는 겨울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요즘 날씨가 변덕을 부리고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다. 봄기운에 눈 녹듯이 녹을 것이고 그 후 온 들판에는 생활의 꽃, 사랑의 꽃, 충절의 꽃, 봄꽃들이 활짝 피어나 꽃 세상을 만들 것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하늘에는 별이 있고, 땅에는 꽃이 있으며, 인간에게는 사랑이 있다고 했다. 어디 별 없는 하늘, 꽃 없는 땅, 사랑 없는 사람들이 공존한다고 생각해보자. 상상조차 하기 싫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아기이다. 아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다. 우리 모두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자.
글/ 박태원(논설위원, 양주사랑포럼회장, 서정대학교겸임교수, 초성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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