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의 무신불립, 민주당 이제는 화합이다.
무신불립, 민주당 이제는 화합이다.
본고는 희망통신 95호에 게재된 글로 지난 5월 9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모임에서 문희상 의원이 발제한 내용을 정리 요약하여 게재한다(편집자 주)
제가 무신불립이란 말을 정계에서 제일 많이 쓴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신불립은 나의 일생을 통한 좌우명 같은 것입니다. 오늘은 무신불립(無信不立), 화이부동(和而不同),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사자성어 세 가지를 키워드로 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말(말씀)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자 합니다. 말은 인간과 동물이 구별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성경은 시작합니다. 그때 말씀은 히브리어 ‘로고스’의 번역인데,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말씀”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이긴 합니다마는 이성, 이념, 생각이라고 번역되도 좋을 것입니다. 모든 생각과 사색의 뿌리가 말로서 시작되었다는 인식론의 주장은 난 옳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먼저냐, 생각이 먼저냐는 것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논쟁인데, 나는 말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김춘수의 시 중에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아름다운 시지만 사실은 주지파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인식론의 근원입니다. 꽃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꽃이라는 것인데,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미를 갖는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그것은 이름이 되어 창조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에 네이밍 하고 프레임 짜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퍼주기’라는 말로서 햇볕정책의 취지는 흐려졌던 것입니다. 또 ‘세금폭탄’이라는 말, ‘부자감세’라는 네이밍 때문에 상당히 곤혹스러운 세력들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이름이라는 힘 속에, 네이밍, 프레임 짜기의 현대 정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 붙이기, 이름 붙이기는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슬람은 통치의 수단을 코란과 칼이라고 말하는데, 한 손에는 코란, 또 다른 손에는 칼을 가져야 통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곧 코란입니다. 대의명분입니다. 개념입니다. 이데올로기입니다. 콘셉트이고 네이밍, 프레임인 것입니다. 칼은 파워, 힘, 권력입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파워(힘)는 통치의 필수이지만, 통치가 정치가 되는 순간 특히 민주정치에서는 “말”의 힘이 더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국정 아젠더를 먼저 선점하고 그것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선거에서 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후적인 결론입니다만, 대통령선거를 보면 늘 시대정신을 명확하게 읽는 쪽이 이겼습니다. 가령 군정종식! 그것으로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네이밍 하는 순간 군정은 종식되어야 한다고 모든 사람이 느끼는 시대정신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평화적 정권교체! 이것은 김대중 정권이 탄생하게 된 기본적 키워드였습니다. 평화적 정권교체는 글자 그대로 한시대가 전체를 통틀어서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가 부여된 것인데, 여기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시대정신이 된 것입니다. 3김식 정치 청산! 이것은 노무현 정권의 탄생배경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위대하거나 잘났거나 해서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정치! 지금 안철수가 이야기 하는 새로운 정치도 똑같은 의미 부여가 되는 것인데, 3김 시대까지의 모든 정치를 통틀어서 묵은 정치로 보고 새로운 정치가 기본적 시대정신이 될 때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되었습니다. 노무현 이전의 3김식 정치는 3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하나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이 그대로 행사되는 권위주의였습니다. 두 번째는 정경유착에 따르는, 소위 금권주의적 정치였습니다. 그 다음이 지역주의였습니다. 지역주의는 고질적인 것으로 아직 해결이 안 되었습니다마는 권위주의·금권주의는 이제 청산되었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제일 높은 이유는 히말라야 산맥위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해발로 따지기 때문에 제일 높은 것입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부터 따진다면 200미터 300미터밖에 안 됩니다. 높아야 1000미터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일 높은 산이 되는가? 그것은 히말라야 산맥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산맥은 바로 그동안 축적된 과거의 모든 것의 총화입니다. 그것이 시대정신입니다. 그 시대정신의 가장 높은 곳에 딱, 현존하는 그 세력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히말라야산맥을 우리는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곧 시대정신을 읽어야 하고, 그 시대정신을 타고 그 자리에 우뚝 섰을 때 집권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정치에서 ‘말씀’은 가장 중요하고 특히, 한국 민주정치에서 ‘말’은 결정적입니다. 사람 ‘人’변에 말씀 ‘言’이 붙은 글자가 믿을 ‘信’입니다. 신뢰가 정치의 기본이 되는 이유입니다. 모든 선거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집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으면 이깁니다. 이것은 불변의 법칙입니다.
말이 국민의 ‘믿음’을 잃으면 백약이 무효입니다. 그대로 말짱 도루묵이 됩니다. 국민의 신뢰는 정권을 창출하는 계기도 되지만 그걸 유지 발전시키고 계속 유지하는 골간도 국민의 신뢰입니다. 신뢰를 잃는다면 그냥 끝나는 것입니다. 무신불립은 2,500년전 공자님의 말씀입니다. 자공이라는 제자는 공자님한테 아주 독특한 제자입니다. 자공이 물었습니다. 정치가 무엇입니까? 공자는 족식 경제야, 족병 안보야, 민신 신뢰야. 자공이 물었습니다. 필히 꼭 부득이 하나를 제거하려면 셋 중에 무얼 먼저 버려야 할까요? 거병 안보야. 자공이 물었습니다. 그다음 둘 중 남은 것 중 하나를 뭘 버릴까요? 그랬더니 거식 경제야. 안보 빼고 경제 빼면 그럼 이상하다 싶어 정치는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보니 그때, 민무신불립이야. 국민이 믿지 않으면 신뢰를 잃으면, 설수가 없어. 국가가 안 돼. 국가가 아닌데 안보는 뭐고, 뭔 경제를 한다는 거야? 국가가 있어야 되는 거야. 국가가 있으려면 민심이야. 국민의 신뢰가 가장 기본인거야.
인간은 사회적동물입니다. 인류가 생긴 이래 둘 이상 모이면 바로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조직이 있으면 서열이 만들어집니다. 그 조직의 집행을 책임지는 쪽이 권력을 잡게되고 바로 그 사람들이 주류입니다. 거기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비주류입니다. 비주류는 비판하고 ‘아니오’라고 자꾸 이야기해야 조직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조직이 건강해져야 민주적 절차에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살이 돋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없으면 썩게 됩니다. 그냥 정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고, 그러면 그 조직은 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한 조직에서 계파(정파)가 생기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입니다. 문제는 계파가 아니라 계파주의인 것입니다. 계파주의! 계파패권주의! 계파이기주의! 우리계파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독선. 다른 계파는 인정하지 않는 원리주의, 순혈주의, 탈레반패거리주의, 분열주의, 엘리트주의(귀족주의), 교조주의. 끼리끼리만 계속 해먹겠다는 독점과 전횡을 보이게 되면 그 조직은 이미 썩기 시작이요, 망하게 되는 단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이 싸우다 망한다,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큰 대의명분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결심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싸워서 이기면 무슨 소용입니까. 만경창파 일엽편주로 가고 있는 조그만 조각배 위에서 선장을 누가하느냐 가지고 싸우다가 난파선이 되면 결국 다 죽는 것입니다. 누가 이긴들 무슨 소용입니까. 민심이 떠나서, 국민의 신뢰를 잃어서 그 민주당이라는 배가 만경창파 일엽편주같이 간당간당 가고 있는데 뒤집어 진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계파 문제도 공자님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화이부동(和而不同)입니다. 민주적 조직이라면 계파건 정당이건 국가이건 다 마찬가지입니다. 구성원 각각의 개성, 의견은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되어야하나, 더 큰 조직의 목표를 위해서 화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어의 구조는 대체로 리더를 군자라고 표현하고 보통사람들을 소인이라고 표현합니다. 소인은 同而不和합니다. 뇌화부동해서 매일 밥 먹고 술 먹고, 끼리끼리 잘 뭉치지만, 큰 목표 밑에 대동단결하여,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불화한다는 것입니다.
군자는 和而不同이라고 했습니다. 큰 사람들 즉, 지도자들은 의견이 다 다르더라도 조직의 큰 목표를 위해서는 하나로 딱 뭉칩니다. 여기서 先公後私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적인 이익보다는 공적인 이익이 앞서야 한다는 이 말을 약간 변형해서 우리 당에서는 先黨後私로 쓰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당 앞에서는 계파나 혹은 개인적인 이득은 뒤라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先國後黨, 당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나라만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힘을 합쳐야 할 때, 여야가 당파싸움이나 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큰 것에 대해서는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보, 민생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없이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 무엇으로 정치를 하겠습니까? 정치의 본령은 국민이 아프고 서러울 때 가서 눈물 닦아주고 같이해 주는 것입니다. 민생, 현장, 그리고 생활 중심 정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끼리만 귀족주의에 빠져서, 이분법에 빠져서, 보수니 진보니 아무리 주장해봐야 국민하고 관계없는 진보백날 해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변함없이 경제 민주화, 보편적 복지, 한반도 평화, 그게 진보라면 왕진보입니다. 우리당이 왕진보입니다. 그러나 튼튼한 안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필요하다 이것을 지켜야한다는 것이 보수라면, 우리는 왕보수입니다. 모두가 선당후사 하는 정신, 선공후사하는 정신, 나보다는 계파, 계파보다는 당, 당보다는 국가가 먼저라는 것이 화이부동의 자세입니다.
다시 한 번 무신불립의 원 뜻으로 돌아가면, 세상의 모든 “말”은 떳떳한 사람의 말일 때 힘을 갖게 됩니다. 뻔뻔한 사람의 말은 힘이 없습니다. 떳떳한 사람의 말 한 마디가 ‘그 말이 맞다’라는 공감을 얻을 때, 신뢰성이 생깁니다. 언행일치가 안 되고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왔다 갔다 하면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를 우리가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선점해버렸습니다. 시대정신을 놓친 것이 우리가 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경제민주화를 끝가지 밀고 가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보편적 복지에 흔들리지 말고 그냥 가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 우리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 길로 가는 것이 혹시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그래 우린 진보야 하고 떳떳하게 가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꾸 또 흔들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떳떳해지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섹스문제에 있어서 깨끗해야 합니다. 아니면 도덕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게 됩니다. 집안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하여 우선 몸을 깨끗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돈 스캔들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소탐하다가 대실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언행일치입니다. 거짓말 하면 안 됩니다 허황된 큰 소리 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뻔뻔하게 되는 것입니다. 뻔뻔하면 신뢰를 상실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작은 실천 하나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뜻을 세우고, 새로운 지도부를 정점으로 똘똘 뭉쳐서 이 일을 해내야 신뢰가 회복되고, 신뢰가 회복되어야 대선패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고,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다음 선거에서 이기지 않으려면 정당생활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당의 목표가 집권이기 때문입니다. 집권하지 않으면 이상이 아무리 좋아도, 정책이 아무리 좋아도 실현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쥐를 못 잡는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닙니다. 쥐를 잡아야 고양이인 것입니다. 정당은 필수적으로 정권을 잡아야 합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정권을 잡아야합니다. 다음지도부의 첫째 목표는 다음 10월 재보선 선거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전 비대위원장으로서 충고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선거에 어떻게 이기느냐에 전념해야 합니다. 다른 것 백날 해봐야 다 소용이 없습니다. 전쟁에 이기려면 우선 신뢰 회복부터 해야 합니다. 이 순서를 밟지 않으면 말짱 허당입니다. 백약이 무효입니다. 그 신뢰회복의 첫걸음은 당의 혁신입니다. 혁신 또 혁신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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