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의 두가지 모순
시론
두 가지 모순- 일본인들의 망언과 한국인들의 궤변
요즘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왜곡과 망언이 기승을 떨치고 있다. 독도 영유권과 위안부 문제를 넘어 주변국들에 대한 침략 자체를 부인하기까지 한다. 일본이 과거 한반도를 ‘침략’한 게 아니라 동아시아에 ‘진출’했다는 억지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왜곡과 망언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서 두 가지 모순을 생각해보게 된다. 첫째, 역사 인식에 대한 모순이다. 세계사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큰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서부 개척’이다. ‘서부 개척’의 핵심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드넓은 땅을 침탈하며 흔히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수백만 내지 수천만의 원주민들을 학살한 사실이다. 이는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영토 확장일지라도 원주민들의 처지에서는 끔찍한 침탈과 대량학살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대개 역사는 승자가 쓰기 마련이고 승자의 기록이 멀리 퍼지고 오래 가는 탓인지, 우리는 승자인 미국의 ‘서부 개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미화할 뿐, 패자인 원주민들이 침탈과 학살을 당한 것은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한편, 지난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승자였고 한국이 패자였다. 승자의 주장은 동아시아에 진출했다는 것이고, 패자의 인식은 한반도가 침략 당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승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국의 ‘서부 개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미화하려면 일본의 ‘동아시아 진출’도 용인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 우리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며 ‘한반도 침략’이라는 패자의 입장을 주장하려면, 미국의 잔인함을 비판하며 ‘원주민 학살’이라는 패자의 처지를 동정해야 하지 않을까? 둘째, 상대방과 자신의 인식에 대한 모순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망언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우리의 역사 왜곡과 억지에 대해서는 용인하거나 감수한다는 뜻이다. 나는 한일 관계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왜곡과 망언보다 우리 역사에 대한 한국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의 왜곡과 궤변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독도나 위안부에 관한 일본의 망언은 1960년대 친일 박정희 정권이 굴욕적이고 졸속적으로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초래한 측면이 크다. 일본이 침략한 게 아니라 진출했다는 억지는 미국의 서부를 개척했다는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 한편, 작년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후보를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1960년대 민주정부를 총칼로 뒤엎으며 헌법 질서를 파괴한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이라고 억지 부렸다. 그리고 1970년대 박정희가 1인 독재와 영구 집권을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가운데 무자비한 인권유린을 일삼았던 폭압적 10월 유신을 경제성장을 위한 것이었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젠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이 개입한 무장폭동”이라는 천인공노할 주장까지 방송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이 보다 더 심각한 일은 우리 역사나 현실을 사실에 근거해 올바로 인식하자고 하면 ‘친북’이나 ‘종북’ 또는 ‘반미’로 매도당하며 심지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데 반해, 이러한 허무맹랑한 왜곡과 궤변은 비난이나 처벌을 받기는커녕 정권에 대한 충성이나 애국심의 발로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왜곡과 망언에 대해 분노하기 전에 한국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의 역사 왜곡과 궤변에 대해 개탄하며 이를 바로잡는 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글/ 이재봉 (원광대학교 평화연구소장 겸 한중정치외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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