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 '지금은 시험중...'
황영경 교수의 문화 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지금은 시험 중…
우리의 수업이 주말의 끝, 금요일인지라 제일 힘든 시간이었지요? 주경야독(晝耕夜讀),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밭을 가꾸는 여러분들은 모두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과의 수업을 마치고 나니, 마치 저도 한 학기를 배운 것 같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영복님(‘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저자)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궁극적이고 분명한 지향점이 이 한 마디에 집약적으로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실질적으로 요구하는 공부는 이렇게 이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현실은 우리에게 더 구체화된 전문성과 더불어 더 높은 학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력으로 개인을 검증하는 제도가 어쩌면 개인을 평가하는 데 훨씬 편리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런 제도의 용이함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가면서 편승해 가고 있습니다. 가수 서태지처럼 장 밖으로 뛰쳐나갈 담력과 용기가 없었으므로. 물론 조금은 있기도 하지만 내게 ‘딸린’ 어떤 것들이 내 발목을 잡고 결사적으로 늘어지지요. 그래서 못 이기는 척하고 주저앉았지만 때로는 부글부글 내면의 자의식이 활화산처럼 간헐적으로 끓어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이런 자신과 불화하면서 일생을 살아갑니다. 결국 세상의 모든 불화는 내 자신으로부터 오는 불화입니다. 아무쪼록 이런 불화 속에서도, 오늘 갈아야 할 내 몫의 밭이랑이 저만치 펼쳐져 있다는 것은 매우 희망적입니다. 희망만큼 판타스틱한 에너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제 삶속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동안이 제일 안온하고 꽉 찬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내 인생에서 공부는 이제 끝! 하면서, 권태로운 연애를 쫑내듯 결별선언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도 일종의 중독이라고 합니다. 이제 불치의 깊은 병이 된 것 같습니다. 나쁜 병에 걸린 것보다는 훨씬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책만 읽는 바보’로 살아가는 게 무슨 실질적인 공익을 끼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이런 삶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저도 ‘시험공부’는 무척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가 다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시험 스트레스처럼 일정기간 후에는 저절로 사라지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만이 시험을 보는 것이겠습니까. 사람의 일생이야말로 온갖 시험의 문을 드나드는 킨 터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열심히 진리를 찾는 기나긴 여정, 우리 영혼이 최상의 경지에 이르려면 내면의 휴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간디의 명상록』에서 읽은 말입니다. 일상의 소요 속에서 유연한 시간이 필요할 때 펼쳐보는 책입니다. 사람마다 휴식 때 취하는 책이 있을 테지요. 어떤 이들은 재미있는 만화책을 보면서 복잡한 생각을 털어낸다고 하고, 슬픈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눈물과 함께 경직된 의식을 느슨하게 풀어버린다고도 합니다. 저마다 알맞은 방법일 것입니다. “생각보다 강한 것은 없다. 행동은 말을 따르고 말은 생각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힘 있는 생각 때문에 유지된다. 그 생각이 힘 있고 순수할 때 그 결과도 항상 힘 있고 순수한 법이다.” 이 대목에도 줄이 쳐져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여러분에게 공부를 하는 것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간디의 어록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앞에서 폼 잡는 말도 사실은 다 책에서 ‘훔친 말’들이었습니다. 이 책, 저 책, 결국 수많은 말(言)들을 훔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사실도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눈 먼 돈이라도 훔칠 수 있는 재주가 없으니 말을 훔치는 삶이라도 살아야겠지요. 인생은 일종의 수습기간이라고, 간디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중에 인간은 선한 세력뿐만 아니라 악한 세력에게도 시험을 당한다고 합니다. 왜 이 대목에다 다시 줄을 긋는지, 아마 저도 지금 어떤 시험 중에 있는가 봅니다. “상상 속에서 적을 만들어 내거나 내면의 적과의 싸움에서 무기력해지거나, 그 내면의 적을 아군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저에게 타이르고 있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훈계하지 않는데, 책은 이렇게 저를 따끔하게 일깨워줍니다. 시험공부 하면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객쩍은 위로를 올립니다.(실은 저를 위한 위로겠지요.) 여러분들과 함께 더 많은 ‘희망’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글/황영경 교수(신흥대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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