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장수 공주님과 빵장수 야곱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했었나?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나 금수저를 입에 물고 나왔으니 분명 귀족 중의 귀족일 터인데 취향은 어찌 그리 소박한지? 그 분들께서 동네 아줌마와 그 아들딸들이 즐겨먹는 떡볶이와 순대, 뭐 이런 서민음식에 구미가 당긴다고 하니 좀 놀랍다. 또 웬 빵들을 그렇게도 좋아들 하시는지?
경영학 수업 실습이라고요? 당신들의 ‘경영 공부’ 때문에 동네 빵집과 슈퍼마켓, 분식집들이 문 닫게 생겼다고요. 그리고 부잣집 아들딸들은 왜 다들 경영학만 해요?(이게 다, 티브이 드라마 때문이다!) 다른 것들도 좀 하면 안 되나요? 인문학이나 미학 같은 것 말예요. 아,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 건 DNA에 들어있질 않다고요? 헐! 나는 우리 아버지가 재벌이라면 유전자에 상관없이 빵장사 같은 건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놀고먹기만 할 건데, 팔도유람이나 다니면서… 여기까지 나오면 내게 날아오는 답은 뻔하다. 그러니까 당신은 맨날 그 모양 그 꼴로 사는 거예요. 장사는 뭐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맞아요. 장사, 그거 아무나 못 하죠. 뉴욕에서 빵장사 하고 있는 야곱 좀 보세요. 맨날 빵 굽다가 말고 쪽지에다 글이나 쓰고 앉아 있잖아요. 이 양반이 빵을 파는 데는 뒷전이고 틈만 나면 딴 짓을 하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글쎄 그게 빵보다 사람들을 더 배부르게 한다잖아요. 그래요, 그 아무나 못 한다는 사업가들이 그런 영혼의 양식 같은 걸 팔 수 있겠어요?
‘공주님의 빵 가게’ 논란 때문에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본다. 노아 벤샤의 『빵장수 야곱』은 구구절절마다 밑줄을 그어놓은 책이다. 현대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만큼 시중에는 여러 번역본이 있으며 『빵장수 야곱의 영혼의 양식』이라는 후편도 나와 있다. 원하는 것들을 무조건 손에 넣기보다는 그것들이 필요 없음을 깨달을 때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통찰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부자가 되는 비법에 목이 마른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니겠는가. 빵장수 공주님께서도 이 책을 보았더라면?
조용한 마을의 작은 빵가게에서 일하는 야곱은 오븐에서 빵이 익어가는 동안 사색에 잠기거나 무언가를 메모하는데, 그 종이쪽지 하나가 우연히 빵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점차 이웃들에게 인생의 상담자가 된다. 그 빵 속에서 나온 쪽지에 적힌 글귀에 감명을 받은 한 여인의 입소문을 타고 야곱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마치 동화처럼 시작되는 이야기가 삶의 지혜로 가득 찬 경전이 된다. 가득 웅크려 쥔 주먹으로는 다른 선물을 더 받을 수 없다고 욕심을 징계하는 구절에서는 지금 우리시대 약자들의 가슴이 뻥 뚫릴 것이다. 사실 이 책에 실려 있는 잠언들은 모든 종교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미 우리를 깨우쳐준 경구들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내면화를 통해서 거듭나는 언어들이 정금같이 빛난다.
『빵장수 야곱』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노야 벤샤는 지금도 빵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야곱은 작가의 분신인 것.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이 작가의 말인즉슨 바로 마음을 비웠다는 것.(역시 마음을 비워야 돈을 번다니까!) 우리나라에도 야곱같이 특이하게 빵장사를 하는 사람, 어디 없나?
모 재벌기업 총수의 따님들께서 베이커리 사업을 중단한다고 하니 그 환상적인 ‘공주님의 빵가게’를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겠다. 달콤하고 고소한 빵 냄새가 퍼지는 우아하고 격조 있는 실내 분위기에서 잠깐만이라도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체험을 했을 테니까. 재벌가의 2세들이 진출한 외식사업들이 지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그 따위 ‘골목대장식’ 말고, 해외로 나가서 달러를 싹쓸이해 오라고 ‘징기스칸식 경영법’을 요구한다.
뛰어난 사업가의 집안에다 돌연변이 하나쯤 점지해줘도 좋으련만. 신께서는 아직도 종교 지도자나 대학자들은 대체로 가난한 아버지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여,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오게 하신다. 지도자로 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시대가 주는 시련 말고도 교육비부터 시작하여 엄청난 경제적 비용이 투자되어야만 하는데. 신께서도 빨리 시대감각을 업그레이드시켜야 되는 거 아닌가. 이제는 자본의 총아들에게서도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신적인 지도자를 현현시켜주실 때도 되지 않았나? 아, 올해가 육십 년 만에 돌아온 흑룡의 해라고 하니 어쨌든 개천에서 용이라도 많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온 몸에다가 승천하는 용 문신을 도배한 ‘돌아온 용팔이’ 그런 사람들이 아닌 진짜 정의의 갑옷으로 무장한 용팔이들.
황영경교수의... 문화 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글/황영경 교수(신흥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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