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지는, 사라지는 계절
태어나자마자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면, 어른으로 바로 태어날 수가 있다면? 실수하면서 배운다거나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은 다른 개념의 역설적인 뜻을 담고 있겠지.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용서받을 입지가 줄어든다는 것. 아이가 아이답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도 어른이 어른답지 못할 때 우리는 분노하고 실망한다. ‘무엇답다’는 말 자체가 사실은 모순된 것인데도 그것이 어떤 진실보다 더 많은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나쁜 진실의 뒤끝을 지켜보는 심정은 4월의 라일락 나무 잎사귀를 씹는 것처럼이나 씁쓸하다.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대신 꽃을 피우는 대자연의 섭리의 일부가 될 테고, 육신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대신 무심한 바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옷깃을 스치게 될 터이다.” 작고한 박완서 작가가 먼저 읽고 써놓은 소개의 글인데 순전히 여기에 꽂혀서 집어든 책이 있었다. <사라진 데쳄버 이야기>, 데쳄버는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뜻하는 독일어, 어떤 왕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왕은 방 안의 책장 뒤에 숨겨진 공간에 살고 있는 아주 작은 사람이다. 집게 손가락만한 체구의 왕은 그러니까 <엄지 공주>처럼 동화 속의 임금님이다. 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이미 어른으로 태어나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작아진다니. 하지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거의 모든 걸 일고 있어.” 데쳄버 왕의 이 자신만만한 말씀이 마치 권좌에 오르기만 하면 모든 능력을 가진 만능인이 된다는 정치적 발언처럼 느껴진다. 아이쿠, 나도 어느새 정치적인 인간이 되어 있는가.
태어나자마자 다 알아버리다니? 그래서 이 전지전능하신 왕은 “무슨 일이든 더 배우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잊어가는 거야.” 라고 강조한다. 이거 완전히 판박이네, 판박이야. ‘입신양명’이라는 도박판에서 머리 굴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 일단 되고 보는 거야! 그리고는 모든 게 올챙이 적 이야기라는 듯 입을 싹 닦는, 그런 관례에 익숙하다보니 뭐 눈에는 뭐만 보일 수밖에. 사실 이 ‘데쳄버 이야기’는 절대 이런 오류의 해석이 나올 수가 없는 순수한 책이다.
앞서 인용한 박완서 작가의 유서 같은 추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상에 매몰된 현대인들이 정신세계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어린 왕자’ 같은 존재가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의 지은이, 악셀 하케는 현대적인 동화를 쓴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의 작가이며 언론인이다. ‘시간의 끝’이라고도 풀이되는 데쳄버(12월)왕을 통해 그는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늙는다는 것이 두려운가?” 이것은 ‘끝난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것인가? 그래서 더 붙잡고 싶은가?’ 라고 확대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게 아닐까.
아마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시인의 새로 나온 시집을 넘기다가 “12월 당원처럼 강제로 먼 곳 극지로 내몰릴 때, 국가여 부디 나를 풀잎 속에 가두어 주소서”라는 구절에 꽂혀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그는 현재 우리 문단에서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인데 ‘당원’ 이나 ‘국가’ 이런 단어들이 그의 시어로 사용되고 있으니 내 얕은 정치적 인식으로는 의아할 수밖에. 봄빛이 찬란한 이즈음에 12월이라는 시린 계절을 살아온 모든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오늘날에도 유형(流刑)이라는 형벌을 시행하는 국가가 있다면/ 나는 그 나라에 가 죄를 짓고 살고 싶다.”(문태준 시집 『먼 곳』에서) 아니, 이게 뭔 소리? 고매하고 점잖기로 소문난 시인님께서 무슨 얄궂은 상황에라도 빠졌었나. 아, 맞다, 맞아. 모든 시인들은 역설법으로 말하지 않던가.
아무리 눈물겨운 이별이라도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라고 독하게 읊어야만 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진달래의 시인 소월께서 이 악물고 조근하게 치루는 이별법을 일깨워준 지도 어언 한 세기가 다되었다. 하지만 시인도 아니면서 우리들의 언어는 갈수록 ‘패러독스’해진다. 지하철 막말녀나 어떤 예비 정치가들이나 구업(口業)의 죄를 짓기는 마찬가지. 하고많은 진달래 꽃 중에 김소월의 <진달래>가 우리에게 유독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은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라며 가혹한 현실을 받아치며 넘어가는 절제된 심상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좀 조용한가? 우리 동네 뒷산으로 진달래나 보러 가야겠다. 그나저나 12월에 또 한 번 남았으니... 황영경교수(신흥대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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