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마음이란 잠깐은 숨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여러 성인들은 이 마음을 다 잡는 연습을 꾸준히 해 왔다. 왕도 정치를 주장한 맹자도 마음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최근 서울시 주민 투표를 둘러싼 말들을 들으면 그 화자(話者)의 마음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이 말들 가운데 첫 번째는 오 시장이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고, 두 번째는 투표율 33.3%가 넘지 않으면 시장 직을 그만두겠다는 말이었으며, 마지막 세 번째는 한나라당 대표가 최종 투표율 25.7%가 실질적으로는 오 시장의 승리라고 한 말이었다. 이 발언들에는 심각한 논리의 비약이 있다. 그리고 이 비약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왜 이러한 논리의 비약이 일어났을까?
첫 번째 논리 비약은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치 국 마시기 오류에서 나오는 비약이다. 오 시장은 현재 대선 후보에 오른 상황이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그에 대한 말만 조금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나 대선 출마를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평범한 시민이 자신은 결코 이효리와 결혼 안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이 없다.
물론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이해 못할 말도 아니다. 한나라당에 지원요청을 했지만, 친박계가 뒷짐 짓고 있는 모습 때문에 오 시장은 화가 났을 것이다. 자신이 한나라당 안에서 박근혜 대항마로 절대로 나서지 않을 테니 박근혜 지지자들도 지금은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두 번째 논리 비약은 투표율 33.3%가 넘지 않으면 시장 직을 그만두겠다는 말이다. 서울시민들은 행정의 여러 업무를 담당하도록 시장을 뽑은 것이지, 특정 정치적 사안 때문에 뽑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작은 사안을 가지고 자신의 시장 직을 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서울 시민들이 선택한 시장 직을 무상급식과 관련된 사안으로 내 던지겠다는 것은 비약이 심한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나의 집을 줄 테니 너의 컴퓨터와 바꾸자는 말과도 통할 수 있는 비약이다. 왜 작은 일에 그토록 큰 직책을 헌신짝처럼 버리겠다는 것일까? 이러한 비약도 상황을 잘 고려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발언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판단되자,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한나라당의 분발을 촉구하는 요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세 번째 논리 비약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나왔다. 홍준표 대표가 최종 투표율을 가지고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는데서 나온 것이다. 법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그가 25.7%는 ‘사실상 오세훈 승리’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33.3%는 왜 법으로 정해 놓았을까?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무효 또는 패배라고 명시적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에 도달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수학을 모르지도 않을 텐데, 만약 정권창출에 실패한 민주당이 자신들이 얻은 득표를 가지고 ‘사실상 민주당의 승리’라고 말하면 그가 어떻게 반응할까? 이것도 상황을 잘 생각해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이제 손익계산서를 따지는 일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자기 합리화를 통한 책임회피와 더불어 참여한 유권자 달래기를 수행한 것이고, 그래서 최대한 민심이반을 막아보자는 계산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왜 이런 논리의 비약들이 나왔을까? 한 마디로 더 가지려는 욕심(慾心) 때문이다.
서울 시장이 자신과 관계없는 대권을 그야말로 ‘허무하게’ 포기하고, 무상급식과 관계없는 시장 직을 사퇴하겠다고 ‘자신 있게’ 나온 대목에 주안해서 보면, 이 말들은 역시 대권 가도를 가기 위한 꼼수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 한나라당 대표의 말은 이제 자명해진 서울시장 보궐 선거와 앞으로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최대한 이탈자를 막아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수사학처럼 보인다. 결국 이들은 차기 총선과 대권을 겨냥하면서 서울 시민들의 간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점수가 세금 182억을 들여 만들어낸 25.7%인 것이다. 이 정도면 최근의 정치 무대에서 열심히 재롱을 부렸던 사람들의 마음이 읽혀지지 않을까?
문제는 서울 시민들이나 관전하는 다른 관객들은 그들의 마음을 다 읽고 있는데, 그들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잘 모를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있다. 그리고 더더욱 큰 문제는 그들이 서민들의 마음을 모를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 있다.
위와 같은 논리의 비약은 사실관계를 따져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욕심(慾心)이 많을 때,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거나 믿지 못할 때도 자주 발생한다. 그러니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 드러나게 마련이니 정치가는 처음부터 ‘마음먹기’를 잘해야 할 것이다. 왕도정치라 하지 않았던가?
시론-서기원
서기원(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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