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사추기, 이모작 인생
나는 환갑을 넘어서 처음으로 새절역 주변에 독립된 희곡집필 작업실 내지는 개인 자료창고를 마련했다. 그래봤자 온종일 자동차소리가 요란한 4층 옥탑 방이지만 나에겐 참으로 소중한 공간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도(蘇塗)’인 작업실 창문을 열면 바로 아래가 종이나 박스, 가구, 가전제품 등 재활용 폐품 집하장이다. 요컨대 ‘소음과 냄새’의 대가로 월세가 조금은 싼지 모르겠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말하는 작가들의 조용한 작업실과는 애시 당초 거리가 먼 셈이다.
물론 지금의 월세로 서울외곽이나 경기도에 작업실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면 소음과 냄새로부터 자유롭고 공간은 더 크고 그럴싸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일이란 게 글을 안 쓰면 주로 대학로에서 사람 만나 술 마시는 건데, 그러다가 자정을 넘겨 자칫 대중교통이라도 놓치면 그 택시비 또한 만만찮다.
한 달 교통비를 계산하면, 지금의 작업실이 감지덕지라 할까? 언제부턴가 자연의 향기보다 사람냄새가 살짝 더 좋아진 것도 한몫 했다. 그야 어쨌든 창 너머 하루 내내 리어카로 재활용품을 실어 나르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연극무대를 떠올리곤 한다. 노인들은 어쩌면 자신의 얼굴을 보듯 서푼어치 폐품들을 주워 팔며 재생의 꿈을 가꾸는지 모른다.
아니 꿈 따위는 사치고 냉혹한 생활전선에서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한지도 모른다. 개중에는 손자손녀들의 군것질 용돈 마련이나 운동 삼아서 폐품을 줍는다고 여유를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 인생이 아닐까? 이 나이가 되도록 여태 월급다운 월급 한번 제대로 못 받아보고 명색이 전업 작가로서 작품(폐품일지도 모를)에만 매달려온 나는 이번에 57편의 희곡을 (재)국립예술자료원 한국희곡디지털도서관(da-arts.knaa.or.kr)에 등재한다.
요컨대 국가 차원에서 희곡을 관리해준단다. 인터넷에 들어가 독자들이 클릭을 하여 읽는 데는 100원, 복사하면 2000원… 수입금 중 10%는 수수료 경비조로 떼고 90%는 작가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작가들에게 조금이라도 경제적 도움을 주려는 것 같아 고맙긴 하지만, 우리나라 풍토에선 말이 좋아 전업 작가지 희곡작가는 엄격히 말해 직업이 아니다.
직업이란 그 일에 종사하면서 호구지책이 해결돼야 비로소 직업이 아니겠는가! 모르면 몰라도 희곡만 쓰서 먹고 사는 작가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한 명도 없으리라. 50여 편을 무대에 올렸다면 제대로 된 문화국가에선 부자(富者), 운운… 꿈속을 헤매며 구름 잡는 술주정 따위가 허망하고 처량하다. 한 편의 희곡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 진통과 내홍을 안다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랴, 본인이 좋아서 걸어온 험난하고도 고독한 오솔길인데!
내 이 초라한 인생 내지는 작가 성적표를 손에 쥐고서 자학하듯 전자도서관에다 희곡들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듯 싹 잊어버리고 지금부터 정말 명작을 쓰겠노라 큰소리친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인생의 하프타임! 우리들의 사추기(思秋期), 이모작(二毛作)인 것이다. 인생의 9회 말 역전 드라마 스릴을 맛보자.
‘2011년 세계보건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 76세, 여자 83세란다. 요즘은 환갑을 챙겨먹는 사람도 드물다. 작년인가 경인년 새해맞이 백호(白虎)들의 반창회는 여러 가지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풍찬노숙 전쟁둥이 자화상(自畵像)’ 같은 만남이었다.
나는 경남 고성초등학교 6학년 4반 출신으로서 ‘육사’ 모임에 참석했다. 반창회 구성원들은 6·25전쟁 전후에 태어난 친구들이다. 방송이나 매스컴에선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의 해’라며 무슨 큰 경사라도 난 듯 떠들어댔지만 지난 1950년 백호의 해에는 동족상잔 전쟁이 터지지 않았는가? 동창들은 그렇게 죽음의 계절에 태생적 비극을 안고 이 험한 세상에 고고의 성을 터뜨렸다는 말씀이다.
아니 그것은 호랑이 형국의 한반도가 포화로 붙은 불을 온몸으로 털어내며 지르는 생존과 분노의 포효였는지 모른다. 친구들은 아무도 회갑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반창끼리 자가 발전한 회갑 동창회가 두루뭉실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을 소중한 추억인 양 매만지고 있으리라.
한 신문을 보니 80세가 넘은 어느 노정객(老政客)이 대학원 영문과 석사과정에 입학을 했대서 화제다. 내친김에 박사과정도 마칠 계획이라고 노익장을 과시한단다. 고매한 학문이든 텃밭을 가꾸는 소박한 일이든 나이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하겠다는 도전정신은 아름답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이라는 말은 늙었다는 의미가 강한 편인데, 미국에서는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고 해서 지혜와 경륜, 경험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영원한 현역으로서 정신이 젊고 건강할 때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 언젠가 이 글을 쓸 때가 그래도 청춘이었다고 말할 때가 오겠지. 그때도 창 너머 폐품 수집상들을 바라보며 거울 속의 내 얼굴을 확인하듯 일생일사(一生一事) 고물이 다된 인생의 재충전과 재생의 열정에 휩싸여 원고(컴퓨터)를 두들길 내 모습을 한번쯤 그려본다.
최송림 칼럼
(최송림 I 본지 논설위원,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