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간사지에서 간사지까지'
한 해가 온통 코로나 전염병으로 저물어 가는데 12월하고도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한국극작가협회(이사장 선욱현) 제4회 대한민국 극작 엑스포 축제가 열렸다. 대학로 ‘좋은 공연 안내센터’ 지하 다목적홀에서의 이 극작가들 잔치는 세 번에 걸쳐 선보인 포켓용 단행본 ‘한국희곡명작선 100권’ 출판(평민사) 축하 행사를 겸했다.
나는 <에케호모>와 <도라산 아리랑>에 이어 이번엔 <간사지>가 명작선 94로 포함되었다. 간사지는 2005년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활성화 사전지원 작품으로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주인공 허종갑 역의 고(故) 강태기 명배우를 비롯해 공호석, 이경영, 등등 실력파 연기자들이 호흡을 맞춰 출연해 큰 박수를 받은 내 고향 경남 고성(固城) 간사지 이야기다. 이야기는 허종갑이 고향의 당숙 월당어른 장례식에 내려와 고성오광대 첫사랑 최숙자 간사지 지킴이를 만나면서 벌어진다는 줄거리다.
이 행사 마지막 날 나는 <작가의 현장, 작가의 길>이라는 타이틀로 극작가 초청 강의도 맡았다. 나부터 동숭동 밤하늘에 별이 총총 뜰 때까지 연극 정신의 실종과 작가의식의 외출을 경계하고 챙기겠다면서 이렇게 특강을 끝맺음했다.
“나에게 희곡이란, 극작보다는 노작(막노동)의 길이 더 정직한 삶이 아니었을까? 그랬으면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부채감이 조금은 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희곡은 내 인생의 아름다운 족쇄이면서도 삶의 질을 가꿔준 햇살임은 확실하다.” 그렇게 행사가 끝난 바로 이튿날 나는 간사지 책을 들고서 고향 바닷가 간사지까지 찾아가 ‘간사지에서 간사지’ 한 컷(사진)을 담았다. 사진은 통영의 강수성 원로작가님이 손수 운전해 차를 몰고 와 찍어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간사지 책을 손에 넣자마자 왜 간사지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었을까? 어쩌면 내가 그토록 평소에 꿈꿨던 일인지 모른다.
나는 그곳에서 광일국민학교(지금은 폐교로 없어진 교명을 따서 작중인물로 광일을 살려냈음) 4학년을 다니다가 읍내 고성국민학교로 전학하면서 간사지를 떠났다. 그동안 물론 몇 번 다녀왔지만, 서울에 살면서 아무래도 자주 못 찾던 간사지다. 간사지에 도착해서 간사지 책 속에도 나오는 거류산과 고인돌, ‘속싯개’를 바라보는 마음이 바닷물처럼 짠했다. 거류산은 내가 소년시절 산딸기와 머루, 칡뿌리도 캐 먹고, 개울에선 가제도 잡던 어릴 적 추억을 가물가물 아련하게 떠올린다. 고인돌은 할머니 감골댁이 가을 나락이 익으면 어린 손자인 나를 그곳에 앉아 혼자 놀게 하고 참새를 훠이훠이 쫓던 바로 그 큰 바위다.
속싯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당항포 승전과 연결되는 전설적인 바다다. 당항포 대승의 숨은 영웅 무기정 기생 월이가 고성 해안을 중심으로 남해 지리를 정탐하여 지도를 그린 왜놈 첩자, 바로 그 비밀지도를 몰래 변경시킨다. 간사지 바닷물이 통영, 삼천포 쪽 남해와 연결된 걸로 바꿔놓아 그것을 길라잡이로 쳐들어온 왜군을 막다른 고성읍 육지 쪽으로 유인, 거의 몰살시키다시피 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야기로서 왜적 무리들이 속았다고 해서 속싯개인 것이다.
나의 간사지 희곡과 연극에서도 ‘월이제(月伊祭)’가 당연히 나오는데, 세월이 좀 흘러 실제 현실로 2017년 제1회 월이제가 고성에서 열리고 내가 쓴 월이 창작무 초연이 팡파르를 울린다. 고성향토문화선양회(회장 박서영)가 월이를 기리는 깃발을 만천하에 올린 의거(?)라고나 할까? 격년제로 열리는 2회 때 역시 내가 쓴 모노드라마 월이 콩트극을 선보지만, 올해 3회는 코로나 때문에 내년으로 미뤄졌다. 대신 작가 개인적으로는 지난 봄 한국문인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문학 3월호에 희곡 <월이>를 정식으로 발표했다.
내년엔 이 발표작을 더 손질하고 다듬어 본격적인 장막극을 선보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쪼록 어느덧 2021년 신축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북경기신문 독자 여러분과 신문사 임직원, 기자들과 더불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로선 2022년 임인년 호랑이띠 새해를 밝히는 ‘간사지에서 간사지까지’가 된 셈이다. 글/ 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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