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평화
‘말 탄 악마들' 이라는 뜻인 다르푸르의 잔자위드(Janjaweed)는 말, 낙타 혹은 토요타 지프로 무장한 민병대가 마을을 뒤집어 놓고 약탈했으며, 소녀들과 여성들을 강간하고, 그나마 남아있던 집들마저 불태워 버렸으며, 남은 주민들도 살해했다.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2003년 7월 발생해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민족학살의 시작은 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서구의 시청자들에게 '아랍게 기마 민병대' 와 '아프리카계 농부들' 사이의 종족갈등이라고 일단 전달된 것을 보다 정확히 들여다보면, 지역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전쟁임이 폭로되며, 이 전쟁에서는 기후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르푸르는 인종적으로 관찰해 보면 '아랍계' 와 '아프리카계' 여러 부족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아랍계' 는 대체적으로 유목민적인 생활방식과 관련되어 있고, '아프리카계' 는 농업적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토박이 아랍계' 들과 비로소 19세기에 이주해 들어와 주로 복음전도사와 상인들인 그런 사람들을 구별하면서부터 사태가 복잡하게 꼬였다.
게라드 프루니어가 말했듯이, 후자의 준-식민지배 이방인 엘리트(quasi-koloniale Fremdelite)인 이들 핵심집단은 노예상인과 상아무역상들로 보충되었고, 이들이 다르푸르를 정복하고 토박이 아랍인들을 자신들과 섞어 놓았다. 그들은 결국, 비록 외부에서 온 정복자들이었지만, 토착원주민들과 융합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엘리트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0년 전 르완다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르푸르 민족학살에서도 중요한 것은 결코 증오나 복수심 때문에 대량학살을 조직하는 즉흥적인 행위자들이 아니라, 대신 잘 '조직되고 정치화된 그리고 군대화된 집단들' 이란 점이다. 그들의 이런 노동으로 인해 지금까지 20~50만 명이 희생되었다. 이러한 민족학살에도 대량학살이 전제되었지만, 늦춰 잡아도 1984년에 이 지역이 당했던 대기근 이래로는 폭력의 역사가 생태적 문제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다르푸르 사회는 이미 말했듯이 한편으로는 정착한 농민들(아프리카계)과 다른 한편으로는 가축을 키우는 유목민(아랍인)에 의해 특정지어졌다. 정착한 농민들과 가축을 키우는 유목민 사이의 갈등은 이미 1970년대 이래 존재해왔다. 갈수록 더 심각해지는 토양침식이 점점 더 증가하는 가축무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갈등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정착한 농부들은 1984년 파국적인 대가뭄 시기에 자신들의 빈약한 소출들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차원에서, 목초지가 대가뭄으로 사라져버린 '아랍인들' 의 가축 떼들이 농민들의 들판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이러한 접근방해 때문에 유목민들은 자신들의 기존 전통인 목초를 따라 가축들은 이동시키는 경로와 목초지들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는 물기가 남아있던 남쪽으로 이동하려는 과정에서, 이들 유목민들은 농민들이 막아 놓은 마라힐(marahill) 목초 길을 점령하려는 전투를 시작했다. 농사를 짓기 위한 우랜 전통에 따라 야생 초지를 불태우던 관습을 지닌 농민들이 공격당했는데, 왜냐하면 농민들에게는 잡초라고 여겨 태우는 것이 절망적인 유목민들이 거느린 기진맥진한 가축 떼한테는 최후의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은, 기후에 의해 조건 지어진 변화들이 갈등의 시발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점점 더 줄어드는 강우량 - 다르푸르의 많은 지역에서 지난 20년 동안 3분 1이상이나 감소했다 - 때문에 북쪽 지방은 이제 더 이상 목축업을 하기 어렵다는 걱정거리가 생겼고, 이 때문에 - 과거에는 부분적으로 정착하고 살던 - 유목민들조차도 남부를 이동할 수밖에 없는, 이제야 비로소 그들 역시 완전한 유목민이 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더 나아가 대가움은 거대한 숫자의 국내 난민들을 생산했고, 이들은 위한 피난시설이 건립된다.
정부의 조치는 이난민들을 인근국인 "차드에서 온 피난민들이라고 선언"하고 대규모로 추방하는 게 전부였다. 게다가 이것은 "영광스러운 귀송" 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전이었다.
동시에 갑자기 증가한 인구(연 증가율 2.6퍼센트)는 초지와 농지의 과다한 이용과 동시에 기존 잠재적인 갈등의 지속적인 고조로 이어진다. 땅과 물을 둘러싼 대결적 상황들이 전통적으로는 조정회의들을 통해 해소되었던 반면(이 조정회의에는 제3자가 참여했으며 정부가 후원했다), 1989년 알 - 바시르(Al - Bashir) 장군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 이후에는 다른 정책이 착수된다. 이 시점부터는 민병대가 정부의 비호 아래 갈등에 개입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럼으로써 전통적인 형태의 갈등해소 방식이 폐기되고, 대결이 첨예화되어 폭력의 문제가 심화되었다.
2007년 6월 유엔환경계획의 연구에 의하면, 상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다르푸르에서는 환경에 의해 조건이 형성된 문제들이 급속한 인구증가와 맞물려 인종적 경계선을 따라, 즉 '아프리카계' 와 '아랍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적 갈등을 일으키는 포괄적 조건들을 제공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생태학적 원인을 가진 갈등들이 인종적 원인들이라고 지각된다. 그리고 실제로 당사자들 자신도 이를 인종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회적 후퇴가 생태적 몰락 때문에 환기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행위자들은 이를 주목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유일하게 주목하는 것은 공격들, 약탈들, 치명적 폭력들, 즉 자신이 속한 우리 - 집단과 그들 - 집단사이의 적대관계이다.
게다가 유엔환경계획은 수단에서 일시 중단된 평화 상태가, 만약 환경 및 생존조건들이 현재 상태 그대로 계속된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냉철히 재확인했다. 이런 조건들은 이미 현재 대가뭄, 사막화, 강우량 부족, 숲의 황폐화 - 간단히 말해서 실존에 필요한 것들의 부족 - 가 특징이며, 그리고 기후변화 때문에 한층 악화되고 있다. 생태적 문제에서 사회적 갈등에 이르는 경로가 일방통행로는 아니다.
* 출처; 하랄트 벨처(Harald Welger)지음, 윤종석 옮김 『기후 전쟁(Klima Kriego)』(서울, 영림카디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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