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세월만 탓하지 말고 여름을 먹자
우리 선조들은 계절의 이름을 너무나 감상적으로 그러나 매우 합리적으로 이름 지었던 것 같다. 봄은 만물 소생의 의미를 두어 춥고 어둡고 움츠림에서 벗어나 화창한 햇볕에 싹이 트고 오색의 화려한 색깔을 입고 생동한다는 의미에서 생(生)이라 하였고 그 생(生)을 마음껏 보며 누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봄(보다의 명사형)이라 하였을 것이다.
여름은 생(生)한 것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며 오감(五感)의 문을 다 열어 제치고 세상을 자연의 극치로 몰아간다고 해서 장(長)이라 하며 열음(연다의 명사형)이라 하였을 것이고, 가을은 그런 자연의 영광과 열기를 가다듬고 엄청난 열매들을 거두고 수확하게 한다는 수(收) 또는 수확 그 자체가 생과의 결별임으로 사(死)라고 하여 떠나 간다의 뜻이 배여 있으며, 겨울은 안으로 수그러들다 겹다 마음이 겨워 잠을 자다의 감출 장(藏)으로 상징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풀이해본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우리의 신체는 동질의 자연으로부터 자연성을 획득하며 자연의 슬기로움으로 운행되고 있음에 생명의 건강함을 유지하고 그 발랄함을 발휘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명의 극치를 만끽하고 있는 이즈음의 우리는 그런 자연의 순리를 터득치 못하고 하루 종일 자연과 위배되는 상황과 조건 속에서 자연인으로서의 자연스러움의 인간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저질러 놓은 틀 속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고 병원 문턱을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출처도 모르는 온갖 약들을 껴안고 먹으며 산다. 자연은 면역성을 키워주는데 우리는 비자연성에 면역성을 빼앗기고 비인간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버스를 타나 지하철을 타나 그리고 웬만한 음식점 가게에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어 겨울보다 더 춥고 몸서리 칠 정도의 서늘함으로 어디에라도 더운 데를 찾게 되는데 거리에 나서면 내리쬐는 햇볕을 견딜 수 없으니 28~30도 차이의 기온 차이를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모두 CCTV에 찍혀 감시당하고 있는 것 같고 빤들빤들한 승용차들의 끊임없이 달려드는 완강함에 기(氣)가 빠진다. 모든 것들이 너무 빠르고 너무 소리 지르고 너무 차고 너무 정신없이 마치 라면 냄비가 바글바글 끓어 타는 냄새가 진동하듯 이곳엔 여름도 없고 겨울도 없다.
상점 앞 거리에는 벌려서는 안 될 좌판 물품들을 깔아놓아 걸어 갈수 없게 만들어 놓고 물어보기 만하고 짜증부리면 화딱지 나고 누가 다쳐 쓰러지거나 싸워도 말리는 사람 없고 짧은 미니스커트보다 더 짧은 반바지를 입고 그 아래 허연 허벅지를 다 들어 내놓고 머리는 풀어 산발하고 아랑곳없이 떠들며 나대는 청소년들이 무섭기까지 하다
이미 계절을 잃어버린 시대 한마디로 철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여름 풍경이다. 우리는 철없는 아이 철이 들다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한다 등등 때를 분별하고 때를 분간 못하는 사람을 “ 철없는 사람 ”이라고 한다.
철이 바뀔 때 마다 철에 맞는 제철 음식을 먹고 철이 들어야 얼이 가득한 어른이 되듯이 철을 분별하는 것은 삶의 변화를 이루게 하여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좌표를 설정하게 된다.
물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이 아니라 여름은 여름대로 강렬한 햇볕을 머금고 심장을 튼튼히 하고 열려 있는 자연에 맘껏 취하여 기운을 쌓는다. 하루 종일 에어컨에 시달리지 않기 위하여 덥더라도 바깥 공기를 쐬어야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땀 흘리는 여름 속으로 들어가 여름의 물을 마시고 놀아야 한다. 누가 그걸 몰라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자. 그렇다고 여름철의 보배로운 여름 기운을 놓칠 수 없는 게 아닌가. 기회를 얻고자 함에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지 그냥 지나쳐버린다면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의 건강을 어찌 담보할 셈인가. 철없는 세월만 탓하지 말고 여름을 먹자.
무세중/통일예술가,본지논설위원
20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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