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용규(에이풀디엔씨 상임대표), 친환경주택사업의 선두주자
진용규 상임대표
사람이 희망인 세상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살리는 친환경주택사업의 선두주자
에이풀디엔씨 상임대표 진용규
전국적으로 건축 경기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더욱이 북경기지역 건축경기는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비의 거품을 빼고, 실용성, 경제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북경기지역 중견 시행회사로 자리메김하고 있는 ‘에이풀디엔씨’ 진용규 상임대표(53세)를 이번호 ‘사람이 희망인 세상’ 주인공으로 초대했다.
그는 남보다 먼저 생각하고, 남보다 빨리 움직이며,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기업이념을 갖고 일하면서 북경기지역사회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도시가 되기를 꿈꾸며, 오늘도 링-타이를 목에 걸고 건축현장을 365일 달리고 있다.
-건축과의 인연은?
“건축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년이 되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 입니다. 당시 보안관계 사업을 했는데 수주율 전국 1위를 해도 남는 것은 빚만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업을 모색하던 차, 부동산과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독학을 시작 했습니다, 전국에서 열리는 건축박람회라는 박람회는 다 찾아가 최신 재질 등 건축사업의 변화와 건축현장 경험을 함께 익히게 되었습니다. 선배, 후배에게 묻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던 차, 우연한 기회에 천산(天山)건축사 하인철 소장을 만나 본격적인 건축시행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획(PM대행)하면, 하 소장은 최고의 설계와 인, 허가를 해 줬고, 저는 분양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건축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저의 삶은 참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7살 때 아버지가 돌아 가셨고, 2살 아래 동생은 군 생활을 하다 사망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20여 년 동안 30번은 이사 했을 겁니다. 늘 생계에 대한 중압감으로 어렸을 때부터 생활전선에 나섰지만, 별 기술이 없는 나로서는 태권도 4단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경기체육관, 미국 태권도장에 사범으로 전전 했지만 생활에 큰 보탬은 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100만원 빚을 내 지하 단칸방에서 살았던 적도 있습니다. 정말 눈물 젖은 빵, 많이 먹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중견 건축 시행사를 만들었는데?
“건축경기도 어렵고, 제 자신이 부족함이 많지만, 제 마음 속에는 항상 건축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합리성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주택사업을 펼치면 주택소비자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시행사업의 성공으로 이어져 온 곳 같습니다. 이번 한탄강변에 기획한 ‘최고급유럽형 테라스하우스’는 전 세대가 한탄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권과 함께 전용면적 24평형의 가격에 계약면적은 50평형이고, 실사용면적은 68평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은 테라스를 이용한 저희 회사만의 건축 노하우라 생각합니다. 특히 제주 영어마을에 국, 공립 교장사택과 교사들의 숙소는 테라스를 이용한 건축으로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살리는 친 환경주택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진용규(에이풀디엔씨 상임대표), 친환경주택사업의 선두주자
-앞으로 에이풀디엔씨의 비전은?
“CS타워오피스텔빌딩(의정부 녹양동), 제주영어마을 교직원 주택(제주) 등의 성공적 시행을 바탕으로 다가올 남북교류시대의 중심지요, 전철1호선 연장지역인 전곡역 인근에 새로운 개념의 최고급유럽형테라스하우스 사업을 10차례 연차적으로 전개하고자 합니다. 이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전곡지역의 주택난을 해결하는 동시에 한탄강과 함께 한국 최적의 휘-링마을을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본사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 최대 승마 둘레 길(5만평)과 대한민국 최초의 안전 필증을 획득 할 청소년 야영장이 70~80% 공정률을 보이고 있어 산과 강의 조화 그리고 테라스하우스 건립은 입주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개인적인 봉사 활동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족하지만 저는 의정부 토박이로 지역 발전을 위해 힘닿는 데로 도울 생각입니다. 저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조금만 잘못해도 ‘호래자식’이라고 몰아 붙침을 당하고 눈물을 흘린 적이 많아 소년, 소녀 가장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1989년부터 의정부애향회 소년소녀가정 돕기 운동에 참여 했고, 지금은 본부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저의 꿈은 재원이 마련되는 데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을 조직적으로 돕는 일을 하고자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가족관계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으며 아내 최옥순씨 사이에 2남을 두었습니다. 취재/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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