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교수의 멋있는 사람의 맛있는 이야기 이탈리야 단상 (18)
이현숙교수의 멋있는 사람의 맛있는 이야기 이탈리야 단상 (18)
여행은 밧데리를 충전하는 거와 같다고...
이태리 문화 중 하나는 휴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모은 돈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다. 여행을 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가장 인상깊이 남은 여행은 적응하느라 이태리에서 힘이 들었던 시기였었다. 이태리 친구 중에 남쪽 ‘카탄자로’에 사는 소피아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나폴리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서울대에 유학생으로 와 있는 동안 서울 이태리 문화원에서 이태리어 선생님을 하고 있었고, 나는 이태리어를 그녀에게 배우다가 친구가 되었다. 나이는 두 살 아래. 그녀는 당시 오페라 ‘심청전’ 대본을 번역 중이었는데 고어와 어려운 단어들이 많아 서로 도움을 주다가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곧 이태리로 가게 되었고 그녀와는 한국에온 남자 친구와 우리 집에 일주일을 있게 되어서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1년 정도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사귀게 되었던 것 같고, 우리는 그 인연으로 이태리에 와서 여름에 그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차로 북쪽 밀라노에서 남쪽까지 거의 8시간을 운전해서 당도했다. 남쪽은 북쪽사람들에 비해 정이 많고, 느긋한 편이다. 야채나 토마도, 올리브 각종 과일이 풍부하게 재배되고 그걸 먹는 편이다. 같이 있는 동안 좋았던 것은 소피아가 한국에 꽤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의 특성을 알고 생마늘을 샐러드에도 듬뿍 넣어 주었다. 생양파와 ‘오리가노’양념을 많이 넣은 야채 샐러드는 아직도 기억에 먹음직스럽다. 북쪽지방은 버터를 음식에 많이 사용하는 편이나 남쪽은 올리브유를 주로 사용한다. 음식 뿐 아니라 남쪽과 북쪽은 생김새도 틀리다. 남쪽은 아랍이나 그리스 이집트인의 피가 많이 섞여 있어 코가 크고 머리는 검은 편이다. 반면 북쪽은 금발이나 밤색 머리가 많고 평균적으로 키가 조금 더 큰 편이고 프랑스나 독일 오스트리아 쪽 문화에 가깝다. 한 때는 로마를 기준으로 나라를 나누자는 정치인이 나와서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북쪽에서 걷은 세금으로 남쪽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남쪽은 산업이 발달되지 않았고 대신 올리브나 과일들 포도를 수확한다. 북쪽 지방에 비해 더 덥다. 그래서 산불도 나무끼리 부딪혀 종종 일어나곤 한다. 남쪽을 여행하지 않았다면, 아니 소피아 집에 머물지 않았다면 이런 것들이 피부에 와서 닿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남쪽 사람들의 주장 에 따르면 외국인이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괄시하지 않지만 자신들이 사투리를 쓰면서 커피를 마시고자 하면 거스름 돈도 불친절하게 던져주는 일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 친구는 후에 밀라노를 우리 집을 방문했고 내가 만들어 주던 된장찌개와 김치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식성이 딱 한국인이다. 우리가 남쪽에 갔을 때는 이태리에서 살기에 전혀 음식에 대한 어려움이 없겠다고 했는데 우리 가족은 이태리 음식을 아주 좋아하고 지금까지도 즐겨 먹는 편이다. 일단은 자극성이 없어서 참 좋고 만드는데 한국 음식처럼 손이 많이 가는 편이 아니다. 특히 야채를 듬뿍 먹는 남쪽 음식이 우리나라 나물 많이 내놓는 시골 밥상 같아서 좋다. 소피아는 그 후에도 또 같이 만나고 지금 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소피아 집에서 머물고 올라오는 길은 참 즐거운 여정이었다. 먼 거리여서 하루 캠핑도 하고 아이들과 천천히 올라 왔다. 바다에 머무르는 동안 해안 도시도 만끽했다. 다시 툭 트인 국도를 달리는 동안 왼쪽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왼쪽은 산을 끼고 가고 있었다. 해는 바다 수면으로 찬란하게 내려가며 수면을 찬란하게 비추고 산 위에 하얗게 떠오른 보름달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걸 동시에 보고 있노라니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오는 느낌이었다. 밀라노가 먼 지평선으로 보일 때쯤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는데 멀리서 보니 번개의 모양이 너무나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동안에 쌓여있던 스트레스 또 힘들었던 일들이 한 번에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얼마나 좋았던지 마치 밧데리가 다시 충전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여행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여행은 밧데리를 충전하는 거와 같다고...
이현숙 교수(신한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