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주 편집국장의 기자수첩/ 한국전쟁 70주년에 붙여
영화 고지전 포스터
기자수첩/ 한국전쟁 70주년에 붙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을 맺게 되자,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이 실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종전 후 한반도의 38도선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미·소를 양축으로 하는 동서 냉전구조 속에서 자유세계와 공산진영이 마주하는 최전선이 되었으며 한반도의 갈등은 국제 냉전이 심화될수록 더욱 고조되어 갔다.
그리하여 미국은 한반도의 38선 이남지역에 미군이 진주하여 일본군의 항복과 무장해제를 담당했으며 이북지역은 소련군이 진입하여 북한 전역을 장악했다. 그리고 소련군정은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을 대중 앞에 등장시키고, 이듬해 2월 8일에 이른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구성하여 38선 이북지역을 ‘확보된 지역에서의 사회주의 구축’ 작업에 들어갔다.
미국은 같은 해 9월 4일 존 하지 중장 휘하의 미 제24군단 선견부대가 김포에 도착하고, 9월 7일에는 더글라스 맥아더 미 극동군 총사령관이 남한에 대한 군정을 선포하였다. 이렇듯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의 냉전은 한반도를 점점 전쟁의 위험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런 당시의 상황은 슬프게도 우리민족을 둘로 나누게 했으며 우리민족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우리는 경험해야만 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끝이 났지만 이것은 정전협정으로 휴전된 전쟁이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벌써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되었다. 당시 이 전쟁으로 우리민족은 엄청난 피해를 당했다. 인명피해를 포함하여 경제적으로도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언제 어디서 무슨 전쟁을 경험했는지 모를 정도로 달라졌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군사력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한류’라고 불리는 우리의 문화는 전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참전국들이다. 이들은 전쟁에 ‘참전’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쟁 당시 63개국에서 190만 명이 우리나라에 참전하여 우리를 지켜주었다. 우리는 참전국 하면 전투 병력을 파병한 미국을 포함한 16개국만 떠올리는데 병력지원 외에 의료지원과 물자, 재정지원국, 지원의사표명국까지 합하면 한국전쟁 참전국은 63개국에 달한다. 필리핀 정부가 한국전 파병을 결정하고, 1천400명의 병사들을 파병했는데 당시 필리핀 참전용사 ‘메이저 영’은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순간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굶주린 피난민들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을 보며 희망이 없음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휴전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이후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그는 기적을 보았다고 말했는데 전쟁으로 피폐해졌던 땅, 한국이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한 모습을 보고는 ‘기적’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메이저 영’ 한 사람만 이렇게 느꼈을까?
전쟁은 어떤 이유든 간에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한국전쟁으로 사망한 숫자를 보면 남한의 군인은 13만 7899명이 전사했는데 이중 13만 5858명은 육군의 사망자이며 해군 1903명, 공군 138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경찰은 3131명이 사망한 것으로 공식 집계됐으며 남한과 함께 북한과 맞서 싸운 유엔군 사망자 수는 3만 7902명인데 이중 3만 3668명이 미군이었다고 집계되어 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번영과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나라의 국군과 함께 머나먼 이국땅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우리를 위해 싸워준 참전국을 우리는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글/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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