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상회(釜山商會)9 ‘사이판’
북경기신문 창간11주년 기념 ‘방영훈 미공개 소설’연재
부산상회(釜山商會)9 ‘사이판’
그런 어느 날 밤이었다. 참호로 한국인 소녀아이가 찾아왔다. 며칠 전 굴 파는 작업에 동원됐던 김갑용씨가 자신들을 집으로 초대, 그때 보았던 자신의 딸이었다. “이보오, 그날 하마트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 했는데 살려주어 고마워” 김갑용씨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섬에 갇혀 사는 게 안타깝다며 한숨을 몰아쉰다.
그날 지반이 약한 곳을 헛디디면서 허리를 삐끗했나보다는 김씨는 만약 태봉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천길 바닷속에 수장되었을 것이다. “웬일이야, 이 야밤에” “아저씨, 꼭 살아야 해요. 기도할 거에요” 나이 불과 15살밖에 안된 앳된 몸에서도 상큼한 여자 살내음새가 풍겨온다.
곧 미군이 들이닥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했다. 그러면 모두 다 죽은 목숨일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동네에 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유성 하나가 길게 꼬리를 물며 바다로 낙하해 갔다. 태봉은 자신의 목에서 목걸이를 벗어 소녀의 목에 걸었다. 고향 앞바다에서 주운 조개껍질을 뚫어 만든 것이다. 그리고 둘은 잠시 포옹했다. 어느 덧 소녀의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오른 걸 느끼면서 태봉은 말했다. “남의 전쟁에 와서 개죽음 하긴 싫어. 꼭 살아 나갈 거다” 그로부터 며칠 후 사이판에서 한 시간 여 거리의 로타섬에 있는 병력이 이동해 왔다. 정보에 따르면 미 해병의 상륙작전이 곧 개시되리라는 것과 가장 우선시되는 지역이 사이판과 앞의 티니안 섬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일부 병력이 티니안으로 이동해 갔다. 태봉은 남고 창섭은 이동하는 배에 올랐다. 서로 말이 없었다.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그냥 서로를 바라보는 가운데 멀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두 사람은 두 눈 가득 눈물이 흐르는 걸 느꼈다.
며칠 동안 천둥 번개가 하늘을 진동하다간 개고 또 그렇게 비가 쏟아졌다 갯다를 반복했다. 여름 우기철에 접어든 것이다. 아침이면 먹장구름이 절벽처럼 바다위로 서고 그 속에서 번갯불이 번쩍했다간 잠시 후 ‘우루르 쾅쾅’ 소리가 다가온다. 비는 다음 차례였다. 멀리서부터 바닷물결을 핥으면서 파도를 일으키고 그리고 정글을 흔들었다. 그러나 낮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명하게 맑아졌다. 그러나 대지에는 수분이 가득 쌓여갔다.
1944년 6월 15일. 이 날 아침은 유난히 일찍 찾아왔다. 먼동이 트일 무렵 보초병의 다급한 고함소리와 비상종소리에 일제히 잠이 깼다. 군화를 신는 둥 마는 둥 총을 둘러 매고 초소로 나간 사람들은 라우라우만(LAOLAO BAY)에 펼쳐진 미 함대의 포진에 그만 숨이 멎고 말았다. 장엄하기까지 했다. 50여척은 족히 될 듯 싶다. 바다를 꽉 메우다 시피했고 거친 파도를 헤치느라 하얀 거품을 쉴 새 없이 뿜어대며 해안으로 항진해 오고 있었다.
사이렌이 울었다. 이는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윽고 대좌의 “각자 위치로“ 명령이 떨어지자 섬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한 시간여가 흘렀을까. 포성이 울렸다. 바다에 떠있는 함대들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정오가 되자 태양이 이글거린다. 가만 앉았어도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미(美) 해병이 움직였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가라판(Garapan) 해안초소의 일본군 포가 함성을 울리기 시작했다.
미군은 쉴 새 없이 수륙양륙차를 해안으로 밀어붙였다. 섬에서는 각 진지의 기관단총 총신이 휘어질 정도로 많은 탄환이 빗발치듯 쏟아져 나갔다. 그런데도 해안은 미 해병들이 딱장 벌레처럼 새까맣게 올라붙었다.
글/ 방영훈(동두천영상단지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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