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상회(釜山商會)19- 낙원회관
방영훈 미공개 소설 연제
부산상회(釜山商會)19- 낙원회관
여자가 앉자 긴 드레스 옆쪽의 터진 사이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하얀 이와 검은 머리채를 앞으로 내려 가슴을 덮고 있는 자태도 인상적이었다. 입술은 도툼했고 눈썹은 그린 듯 짙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경성여자의 부드럽고도 상냥한 음성이었다. 더구나 종달새 같은 음성으로 노래할 때부터 관심이 가던 여자다. 순간 성일은 숨이 멎는 듯 했다.
그리고 그녀의 향긋한 숨 냄새를 맡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리고 하체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순간 허영심이 꿈틀거렸다. 경성의 여자에게 남도사내의 호방함을 드러내고 싶었고 또 그녀를 정복하고 싶다는 욕망도 솟구쳤다.
성일은 여자와 눈을 마주한채 맥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하나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봉투를 사이에 두고 손뼉 치듯 두드리자 봉투종이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지폐가 쏟아져 흩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성일에게로 집중됐다. 돈이 흩날리자마자 여급들이 서로 돈을 줍기 위해 몰려든다. 그때 방성일은 여자의 허리를 낚아채며 말했다. “여이 봐라, 나 방성일이다. 마, 내 여자해라. 촌놈이지만 열정은 있다.”
다음날 영철을 따라 먼저 백범 김구를 만나고 이화장으로 건너갔다. 둥근 안경테 너머의 그의 눈은 의외로 따뜻했다. 검정 두루마기를 입은 채 서서 성일의 손을 잡은 백범은 투박하면서도 굵은 음성으로 영철을 가리키며 ‘이 사람에게서 여러 차례 얘기 들었다’며 ‘앞으로 이 나라가 잘 살려면 사업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면서 공자가 말하길 ‘사업이란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공공성을 가진 것’이라고 갈파했다.
이화장에서 만난 이승만박사는 성일을 보자마자 대뜸 “이보시게. 화약공장 차리시게” 하더니 성일이 뜨아한 표정을 짓자 “기찻길은 왜놈들이 많이 맹글어 뒀지만서두 사람 다니고 차 다니는 도로가 필요치 않겠나. 언제까지 흙먼지 나는 길로 다닐 수야 없지 않겠느냐”며 미국의 길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길을 틀려면 화약으로 산허리를 뭉개야 한다”고 역설했다.
성일은 이 박사나 백범으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역시 지도자들이라 멀리 보는 혜안이 있음을 느꼈다. 뿐 아니라 그는 어느 새 언젠가 꼭 화약공장을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진실로 돈을 벌기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업가가 되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니, 3월이 다 갔는데 웬 눈인가“하고 신기해하고 있는데 영철이 성일의 소매를 끈다. ‘소개할 사람이 있다’ 는 것이다. 그를 따라 종로 뒷길을 걷자니 눈밟히는 소리가 ‘뽀도독’ ‘뽀도득’ 거린다. 어느 새 어둠이 내려앉은 가운데 영철의 머리며 성일의 코트위로 눈이 소복히 내려앉았다.
이윽고 영철이 기와집들이 죽 늘어선 골목 가운데 ‘명성’ 이란 간판이 걸린 한옥앞에 이르러 소리를 질렀다. “이리 오너라” 안으로 들어서자 마당한가운데 돌 어항이 놓여있고 소나무 몇그루가 화단에서 눈을 맞고 서있었다. “와 계신가?”
방에는 이미 술상이 올라있고 그 가운데 구렛나루를 기른 40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인사하게. 서울시경 김호익총경일세. 전국 경찰 사찰과를 통솔하시지”
그제서야 성일은 그에게 넙죽 엎드려 절하며
“어르신을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하고 인사를 올렸다.
“얘기 들었네. 방사장 동생이 사찰과 교육을 끝내고 부산에 배치됐다지”
“부끄럽읍니다만 많이 헤아려 주십시오”
성일은 내심 ‘영철이 이만큼이나 거물이 됐나’ 하고 놀라고 있었지만 성천을 위해 이런 자리까지 만들어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신선로를 중심으로 갖가지 요리들이 나오는 가운데 정종이 데워져 올랐다.
이윽고 방문이 살며시 열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거문고가 튕겨지고 탈춤이 한바탕 어우러졌다. 한복을 입은 기생들이 교태를 부렸고 연거푸 술잔이 오갔다.
영철은 연신 시국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까딱하다간 남북이 영영 갈려버릴까 걱정이라는 심경을 토로했다. 누구나 수긍하는 일이지만 이미 김일성이 소련의 지지로 북을 장악한 마당에 남쪽까지 사회주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눈은 멎은듯하고 총경의 수하가 차 대령했다고 알려오면서 세 사람은 자리를 털었다.
“꼭 한번 부산서 모시고 싶습니다.”
는 성일의 말을 뒷전으로 들으면서 총경은 ‘머잖아 지방시찰 때 한번 보세’하고 여운을 남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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